은유 지음, 도서출판 유유
어떤 책들은 책장이 넘어가는게 아까워서 아껴읽게되는데, 책 <쓰기의 말들>이 꼭 그랬다.
'쓰기의 말들', 언뜻 보면 무슨 뜻이지?! 싶다가, 부제를 읽으면 조금은 알것 같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 하니, 안 쓰는 사람을 쓰게 하는, 또는 쓰고 싶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쓰기의 말들을 일러주겠다는 의미다. 또 다른 부제는 글쓰기로 들어가는 104개의 문!
이 책은 작가 은유의 글쓰기 노트 같다. 지은이가 글을 쓰는 삶을 살면서, 그 사이 읽고 감동하며 책에 그은 밑줄들을 함께 보는 기분. 이름을 들어봄직한 작가들, 우리에게 문학과 예술로 감응을 선사한 이들이 남긴 통찰의 문장(명언?)을 보는 즐거움과, 그것을 삶으로 통과한 작가의 글에 또한번 즐겁다. 작가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과 포개어지지만, 글 쓰는 사람의 감각으로 해석되어 또 다른 깊이로 다가온다.
재밌게도 작가가 그랬던 것 처럼, 독자인 나 역시 작가의 글에 하나 하나 밑줄 그으니 마치 돌림노래하듯 함께 놀이를 하는 기분도 든다. 에세이 곳곳에서 또 다른 작가들, 저자에게 울림을 준 작품들이 많이 소개 되고 있는데, 그 말들이 어찌나 귀하고 단지, 읽고싶은 욕심에 어느새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도 가득찬다.
도저히 밑줄 긋지않고는 참을 수 없었던 몇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by 황현산
작가는 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든다. 읽고 쓰며 묻는 과정. 그 과정 가운데, 그것이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묻고,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물으며,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고백한다.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집니다. by 롤랑 바르트
망설임의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지, 그 망설임들 가운데,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내고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은 글쓰기 팁을 넘어 삶의 태도에 관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림이란 실제적 장소를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그곳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 제공하는 윤곽과 인상을 조합해 내는 것이다. by 에드워드 호퍼
화가가 그림 그리는 과정처럼, 글쓰는 사람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하며, 주제와 관련된 상황의 구체성을 통해 글의 정조를 살려야 한다는 실제적인 글쓰기 팁까지!!
104편의 에세이는 마치 나 스스로의 경험처럼 소중하게 다가와, 무언가 쓰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업무에 찌든 일상가운데, 책상 한켠에 다 읽은 <쓰기의 말들>이 있어 위안삼는다. 나의 노동은 몹시도 주도적인 것이며, 나는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 있다는 신호를, 그 위로를 책의 표지가 은근히 전한다. 그 위로만으로 충분치 않아 참을 수 없어질 때, 밑줄 그은 부분을 쓰윽 읽으면, 뭔가 조금은 숨이 트이는 것 같다.
당신도,
일단 한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