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2010), 문학과 지성사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에서 시인 최승자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제목처럼 저기 멀리에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아서 쉽지 않다. 그의 시 속에서는 바람이, 구름이, 하늘이, 바다가 그가 창조해낸 시공간을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 흘러감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쓸쓸해져 몸둘바를 모르겠는 기분에 휩싸인다. 시인이 그리는 세계를 온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시집 귀퉁이를 계속해서 접게 되는 걸 보면, 시인의 세계가 나와도 조금은 겹치는구나 싶어 마음이 더 시리다. 시인의 세계는 시간이라는, 세월이라는 쓸쓸하고 머나먼 여정이자 공간을 그린다.
시 '사람들은 잠든 적도 없이' 에서 그는 죽은 神을 매일매일 황무지에 끌어다 버리는 인간들을 측은해하고, '다리를 건너는 한 풍경'에서는 하늘 값, 바다 값도 모르고 놓인 다리 위를 비틀거리는, 그저 다리를 경유하기만 할 뿐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느냐 묻는 듯, 안타까움이 삐져나온다.
'구름 비행기'에서 오래된 미래인 과거, 오래된 과거인 미래라는 표현엔 마음이 욱씬거린다. 그 과거와 미래, 어느 것이 새 것인지, 새 것이 있긴 한 것인지, 어쨌든 그 사이를 날고 있는 우리, 그 속의 시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슬픔이 뭍어난다.
가장 좋았던 시 중에 하나는 '时间입니다' 인데, 과거때문에 현재도 미래도 다 놓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시어는 일말의 조롱이 섞이지 않은, 철저한 반성의 시어로 다가온다. 늘 과거에 살아서 지금을 과거에 끌어다 놓는 삶, 어느 과거를 끌어올지만을 고민하는 삶, 앞으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우리의 시간을 말한다.
'가만히 흔들리며' 는 시인의 속마음 같다. 괄호안에 쓰인 시어들은 시인의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듯 한데, 그림자가 흔들려 내가 흔들린다는 고백은, 나의 소리, 나의 그림자의 소리를 따라 가만히 가만히 흔들리겠다는 속 깊은 의지같다.
시 '한 세월이 있었다' 의 세계엔 세월이, 사막이 있다. 사막 위에 강물이 흐르고 하늘이 흘러가도 사막은 여전히 사막이어서, 시 속의 나는 부는 바람을 맞고 배가 고파진다. 세월은 계속 거기에 있어 슬픔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세월은 흔들리지 않고 그저 사막 위에 있으니, 그 세월의 흐름이 쓸쓸하고 머나먼 이 시집의 표제와 꼭 알맞다.
제일 좋았던 시 중의 또 하나, '어느 토요일'. 근무지에서 퇴근하지 않고 공놀이 하는 노동자, 이를 지켜보는 예수, 불행해서 행복한 예수가 졸며 졸며, 눈꺼풀을 꿈뻑이며 공놀이를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때로는 꿈뻑이며 그가 공을 빼앗기고 절망하는 걸 놓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지켜보는 예수의 피로마저 느껴지는 시어들에 코가 시큰거린다.
시인의 세계가, 그 시공간을 훌쩍 훌쩍 뛰어넘은 시인의 말들 사이,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그 간격들에 빼곡히 들어찬 시인의 세계를 좀 더 가까이 이해하고 싶어 두번이고 세번이고 읽게되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