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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04. 2017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굴욕

까띠 라뺑 연출, 연극 <무대게임>


‘연출가와 배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부제가 달린 연극 <무대게임>은 프랑스 극작가 빅토르 아임의 작품이다. 아직 공연 무대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빈 무대에서 배우와 작가 겸 연출가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코미디로 풀어냈다.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두 관계의 미묘한 피로감을 무대 위로 끄집어내어 관객의 눈과 귀로 피로감의 표면을 만질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었다. 짧지 않은 2시간 공연 전체가 일막一幕으로 구성됐다. 두 명의 배우가 쉬지 않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설전舌戰을 벌이는데, 배우들의 집중력이 실로 대단한 작품이다. 일막이라는 구성은 물리적으로도 배우와 관객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도록 한계로 몰아붙인다.



무대에 오른 두 여인, 한때는 잘나갔지만 한물간 자신을 한 번 더 증명하고 싶은 여배우 오르탕스와 훌륭한 작가이지만 훌륭한 연출가인지는 의심스러운 오만한 연출가 제르트뤼드의 팽팽한 신경전이라는 단순한 구조와 다르게 여배우와 연출가의 상반된 캐릭터,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오묘한 관계가 극의 재미를 더한다.


여배우 오르탕스는 복잡한 연애사는 물론이고 취향이나 태도가 교양과는 거리가 있다. 형이상학을 입에 달고 사는 연출가의 난해한 요구를 도통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네 말이 맞다.”를 연신 외치며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 물론 무대 조명기사 바티스트를 빌어 관객에게 그 속에 담긴 내밀한(?), 속 깊은 험담을 내비치지만 말이다.


제르트뤼드는 의식 있는 레즈비언 작가를 지향하지만 무대에서 하는 행태란 위선적이기 그지없다. 그토록 혐오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 통제와 감시를 일삼는 독재자, 권력자들을 맹비난하지만 무대 위 연출가로서의 그녀 모습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녀가 여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난해하기 위해 난해하려 애쓰는 말 그대로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자위自慰일 뿐이다. 그녀의 그런 오만함은 그 정도가 어찌나 대단한지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프랑스식 유머와 풍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겁먹은 것과는 달리 인간의 본성이나 관계란 국경과는 별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했다.) 한동안은 서로를 추켜세우며 가식을 떨던 그들은 그들의 욕망이 드러나고 약점에 생채기가 깊어질수록 선한 체 하기를 그만두고 그들 관계의 피로함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두 여인의 관계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관계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친구이자 서로의 치부를 가장 잘 아는 적이며 서로의 천박함과 오만함을 빈정대면서도 서로의 역할에 기생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동료이자 서로의 비위를 살펴야 하는 갑과 을의 관계이기도 하다. 심지어 연애방식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우리 삶을 함축하여 놓은 것처럼 일상의 관계들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선線에 이를 때까지, 최소한의 예의 따위가 무색하게 죽어라 서로를 물고 뜯던 그들,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그들의 너무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할 때의 특유의 기준과 잣대가 그들을 조금도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으르렁대던 그들에게 좀처럼 멈추기 어려울 것 같던 싸움과 관계의 파국이 서서히 거리를 좁히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들의 그토록 첨예하던 욕망이 나란히 서는 순간, 서로가 존재함으로 자신이 존재함을 깨닫는 순간, 더 솔직히 말해 기생의 주체를 지켜야 하는 절박함과 그들 무대를 난도질하는 비평가들을 조롱하며 무대라는 그들의 욕망을 지켜내고자 할 때, 그들의 좁힐 수 없을 것 같던 머나먼 욕망은 서서히 나란히 놓인다. 제르트뤼드의 방백 중에 오르탕스를 죽이고 싶은 욕구에 대한 고백이 있다. 그 욕구는 자신의 예술을 실현하는 도구를 파멸하고 싶은 욕구이며 동시에 그 파멸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나는 지금 구렁텅이에 빠졌노라고 절규한다. 급기야 자기가 그토록 죽이고 싶던 그녀가 결국엔 자기 자신임을 깨달을 때, 그들 관계는 달려온 파국을 봉합해 나갈 조짐을 내비치게 된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 온 극단 프랑코포니는 ‘불어권 극단’이라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대표 희곡을 불역하며 프랑스에 소개하는 작업을 해온 불문학자 임혜경, 까띠 라뺑 두 교수가 중심 축이다. 앞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프랑스어 권 세계의 현대극들을 찾아 번역하고 공연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극단 프랑코포니의 여덟 번째 공연 <무대연극>은 아쉽게도 지난달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2014년 대학로 게릴라극장에 오른 까띠 라뱅 연출, 연극 <무대게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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