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화장을 하되 표정까지 가려선 안 된다.
봄의 재료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봄나물을 떠올릴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인고해 봄의 생동감과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봄나물만큼 좋은 재료가 또 있을까? 오늘의 주인공은 그 중에서도 ‘봄나물의 왕’ 이라고 불리는 두릅이다. 인터넷에 두릅을 치면 여지없이 건강에 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사포닌 성분으로 혈당을 낮추고 당뇨병을 예방하고 신경안정의 효과도 있다고 한다. 혹시 내일부터 두릅을 아침마다 한 뿌리씩이라도 씹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데, 나는 이런 정보를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식재료들의 영양학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의 진정한 가치는 건강이 아닌 찰나의 계절을 품은 미식에 있다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식재료의 장점을 자랑하기 위해 이런 영양학적 특성을 강조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아름다운 의도와는 다르게 이는 식재료의 본질적인 목적, 즉 미식의 얼굴을 흐리는데 기여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많으면 반드시 독이 된다. 그 효과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음식에 건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섭취하는 ‘양’을 이야기해야 한다. 섭취량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떤 재료가 몸에 좋니 나쁘니 하는 것을 보통은 ‘과장광고’라고 부른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건강한 일인가? 그래? 그럼 하루에 20L 마신다면? 와인과 전통주는? 종류에 상관없이 알코올은 1급 발암물질이다. 당뇨가 있다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갈 일이지 시장에 두릅을 찾으러 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제철 맞은 맛있는 음식을 고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를 위한 모든 방면에서 아름다운 방법이라, 조금은 둔감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계절을 느끼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니 건강 이야기는 이쯤하고 우리가 진정 궁금한 점은 이 맛있는 재료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었다고 소문날 것인가?'이니 이제는 맛에 관하여 이야기하자.
알맞게 데쳐낸 제철 두릅을 맛보면 훅 다가오는 첫 번째 느낌은 봄나물 특유의 기분 좋은 미약한 쌉쌀함으로 시작해 혀 끝까지 퍼지는 고소함이다. 땅콩이나 기름 같은 노골적인 고소함이 아닌 야채 특유의 은은한 향미가 어우러진 식물이 주는 우아한 고소함이다. 단단한 식감이 주는 아삭함은 두 번째다. 가히 봄의 제왕인 아스파라거스를 능가하는 맛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스파라거스 대신 두릅에 에그 베네딕트를 곁들여야겠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두릅도 아스파라거스처럼 봄의 전령이라고도 하지 않나!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입맛 정말 비슷하다. 레시피는 간단하나 동시에 복잡하다.
1. 두릅을 데쳐 준비한다. 원한다면 서비스 전 살짝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한번 구워 데워 낸다.
2. 수란을 준비한다.
3. 홀란데이즈 소스를 준비한다.
4. 준비된 3가지 재료들을 접시에 담는다.
필자의 쓸데없는 설명 욕심이 있어 독자들을 쫓아낼 것 같으니,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주로 하되 조리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동영상을 함께 첨부하도록 하겠다.
1. 두릅 데치기
두릅의 뿌리 쪽과 잔 가시들을 칼로 다듬는다. 데치는 시간이 길지 않기에 두릅의 뿌리 크기가 꽤 크다면 미리 2 등분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1~2분 정도 가볍게 데친 두릅의 맛을 먼저 보자. 쓴맛과 떫은맛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에는 데친 뒤 1시간 정도 찬물에 담가 두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갓 돋아난 봄 두릅은 연하고 부드럽기에 데친 뒤 바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잊지 말자. 야채나 나물을 데칠 때는 소금을 넉넉하게 쓰시라. 반드시 물을 살짝 간간하게 맞추자. 짠물이라 하더라도 데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어차피 간이 깊게 배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금물에 데치느냐 맹물에 데치느냐는 결과적으로 천양지차를 가져온다. 다음 번 브로콜리를 데쳐 초장에 찍어 드실 때 소금물에 한번 삶아 보시라. 브로콜리 생각보다 꽤 맛있네?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간이 되어 있는 덕에 초장도 훨씬 덜 찍게 되어 결과적으로 염분 섭취도 줄일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추가적으로 간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한식을 사랑하는 외국물 먹은 요리사 입장에서, 한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가 지나치게 맛있다는 것이다. 이게 뭔 팥으로 메주 담그는 소리냐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장류는 짠맛, 감칠맛, 자체 특유의 향미가 한 몸에 다 들어가 있는 그 자체로 ‘맛 폭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맛을 내기 위해서 장을 손에 ‘먼저’ 쥐면 한식의 맥락에서 소금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렇게 장으로 간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이 가진 특유의 향과 강렬한 감칠맛이 주 재료의 정체성을 침범하기 일쑤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주재료인 주인공의 목소리다. 결론적으로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냈건 그렇지 않던 장으로 덮어버려 장 맛 밖에 안나는 요리는 안타깝지만 미식의 관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그러니 수준 있는 섬세한 요리를 하고 싶다면, 장을 덜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먼저 소금을 쓰시라. 치트키를 덮어놓고 쓰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은 어디 가고 없다. 그래서 앞으로 나물을 무칠 때는 넉넉한 소금물에 데친 나물에 간장, 된장 등을 약간의 뉘앙스만 나게 조절해 보자.
2. 수란 만들기
마침 두릅을 데친 물이 남았기에 그 남은 물로 수란을 만들도록 하자. 약간의 식초를 넣는 것은 계란흰자의 단백질 응고에 도움이 된다. 물이 팔팔 끓으면 불을 끄고 수저로 둥글게 저어 물 회오리를 만든다. 그리고 이 포인트가 중요한데 계란을 물 회오리가 돌고 있는 바깥이 아닌 회오리의 중간에 떨어뜨린다. 그러니까 태풍으로 치면 태풍의 눈 쪽에 계란을 조심스럽게 떨어뜨린다. 그러면 물 회오리가 돌면서 자연스럽게 수란의 모양을 잡아준다. 노른자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반숙으로 익히는 데는 보통 2분 30초에서 3분 정도가 적당하다. 사실 수란 만들기는 유튜브에 실력자들이 많이 솜씨를 뽐내고 있고, 또 필자가 알지 못하는 신박한 방식도 많으니 취사선택해 적용하도록 하자.
3. 홀랜다이즈 소스 만들기
단연 에그 베네딕트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홀랜다이즈 소스이다. 필자의 쓸데없는 설명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님들을 위해 요리를 과학적 원리에 기반해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유튜버인 아미요 님의 영상을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66xH_NAaSVs
무엇을 소스라고 정의할 것인가? 필자처럼 간 크게 회사를 뛰쳐나와 제2의 인생을 음식으로 발복 하겠다는 욕심이 아니라면 그냥 '점성이 있는 맛있는 액체'라고 정의하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점성을 만드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크게 전분, 단백질(젤라틴), 식물의 입자가 대표적이다. 그중 가장 가장 화려하고 풍성한 소스를 만드는 재료는 바로 계란 노른자이다. 홀랜다이즈 소스는 그냥 쉽게 말해 '버터로 만든 따뜻한 마요네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아는척한답시고 진짜 이렇게 말하면 프로들의 비난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우리끼리만 이렇게 아는 걸로 하자. 하지만 재료와 테크닉이 다를 뿐 둘의 구성원리는 완벽히 동일하다.
재료는 계란노른자와 녹인 버터, 그리고 약간의 레몬즙 그리고 소금이 들어간다. 계란노른자와 버터의 고소함이 소금을 만나 목소리를 내며 약간의 레몬즙 산미가 대조적인 악센트를 부여한다. 따뜻하고 크리미 한 질감이 특징인 이 소스는 녹진한 계란과 고소한 제철 아스파라거스를 만나 함께 어우러지며 그 영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대신해 두릅을 주인공으로 대체한 레시피다. 소스 만드는 법은 필자보다 능력이 출중한 아미요님의 동영상을 참고하도록 하자. 설명 정말 잘하신다.
맛은 어떻게 내는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맛의 대조’와 ‘맛의 강조’다. 맛의 대조는 주인공 맛과 대척점에 있는 뉘앙스를 더함으로써 대비효과를 통해 주재료 본연의 맛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익숙했던 데친 두릅에 초장을 찍어먹는 경우가 그렇다. 고소한 두릅에 초장의 새콤달콤한 뉘앙스라는 새로움을 덧댄다.
반면, 맛의 강조는 이미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비슷한 뉘앙스의 재료나 테크닉을 더해 오히려 그 장점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오늘의 레시피가 바로 이 경우로 우리는 두릅이 가진 미묘하고 우아한 고소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수란에서 터져 나오는 노른자와 거기에 풍성한 버터향을 품은 따뜻하고 상큼한 홀란데이즈 소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두릅 즉, 주인공의 표정을 가려선 안 된다. 인생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하듯이 말이다.
기획 의도
두릅은 가히 아스파라거스를 압도하는 봄나물의 제왕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나 주 재료의 맛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껴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맛의 얼굴을 잘 돋보이게 할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재료와 요리법을 떠올려 조합해 보자.
포인트
1. 간장, 된장, 고추장은 너무 맛있어서 문제인 식재료다.
2. 맛을 열어주는 열쇠는 소금이다. 장을 줄이고 소금을 쓰는 연습을 하자. 특히 나물을 무칠 때.
3. 맛을 전개하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맛의 강조' 그리고 '맛의 대조'.
4.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공의 표정을 가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