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요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필자는 음식 공부한 것에 비해 미식 경험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미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남들은 어려서 한 두 번쯤 충분히 먹어봤을 법한 요리도 성인이 되어서야 경우 경험해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 건너 음식을 공부한 덕에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레스토랑도 가볼 기회도 있었지만 ‘에체바리’(바스크의 전설적인 차콜 레스토랑)를 제외하고는 대단하게 큰 인상을 받은 기억도 잘 없다. 결핍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지만 여전히 내 입맛은 둔해 크게 가리는 것도, 그렇다고 유달리 좋아하는 것도 없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솜씨보다 내 마음을 끄는 것들은 대개 원초적이고 투박한 것들이다.
이런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식 경험이 있다. 기상 이변으로 유례없는 폭염에 휩쓸렸던 재작년 여름, 푹푹 찌는 주방에서 생선파트를 맡고 있을 무렵 파트장의 별장으로 주말 초대를 받았다. 인구가 70명이 채 안 되는 스페인 북부의 한 시골 깡촌이었다. 우리는 함께 숲으로 들어가 오전 내내 전통주를 담글 파차란 열매를 따고, 별장 근처의 호수에서 수영을 즐겼다. 점심 식사를 위해 준비해 간 거라고는 파트장이 미리 준비한 야생 버섯 오믈렛과 약간의 고기가 전부였다. 마침 마르다 못해 갈라진 마당 텃밭에 물러 터져 가는 토마토 몇 개가 겨우 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토마토를 썰어 약간의 소금과 올리브 오일만 뿌려 요리라기도 뭐 한 간단한 샐러드를 준비했다. 나는 그 토마토를 맛보는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은 내가 얼마나 표현에 박한 경상도 남자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후두부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와인 테이스팅에서나 사용되는 아로마 용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동시에 소금과 만나 폭발하는 토마토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산미가 입을 가득 채웠다. 그 토마토는 이미 완결된 엄연한 하나의 ‘요리’였다. 무언가 인위적으로 더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한, 사람의 손으로는 결코 창조할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학업을 마칠 때까지 “요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토마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재료다. 토마토를 이야기할 때 감칠맛을 빼놓을 수 없다. 가히 감칠맛을 위해 탄생한 재료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식물학적으로 과일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당분과 함께 보통은 고기에 들어있을 법한 글루탐산(감칠맛 성분)과 황 화합물을 이례적으로 많이 포함하고 있다. 토마토를 과일로 쉬이 여기지 않는 이유다. 왜 푹 익은 토마토를 먹었을 때 일반적인 야채 맛도 아닌 것이 혀에 무겁게 감기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으시련지 모르겠다. 지금 주방으로 가서 미원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자. 그리고 토마토를 다시 떠올려보자.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게 바로 감칠맛이다.
그래도 요즘은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msg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남아있다. msg는 설탕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문제가 있는데 설탕이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해서 문제”라면 msg는 “넣으면 무조건 맛있어지는 ‘마법의 가루’로 여겨서 문제”라는 데에 있다. 사용량이 지나쳐 맛을 버리게 되는 것이 문제이지 msg 자체는 소금, 설탕과 같은 위치에 있는 감칠맛을 위한 하나의 ‘조미료’에 불과하다. 결론만 말하자면 화학조미료니 뭐니 하는 듣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 같은 자극적인 언어에 속지 마시고 원래 사용량의 절반 이하로 깎아서 ‘적당히’ 사용하면 된다.
대부분의 야채나 과일이 그렇듯, 토마토 또한 줄기에 매달린 상태에서 완숙에 가까워질수록 당과 향 화합물을 더 많이 축적하며 훨씬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잘 익어 감칠맛 넘치는 토마토는 달고 향긋한 캐러멜 같은 풍미까지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수준으로 완벽에 가깝게 익은 토마토를 수확해 대량 유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에틸렌 가스나 상온 후숙을 통해 유통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토마토가 익어 ‘보이게’ 만드는 얕은 과정일 뿐 땅의 에너지를 온전히 빨아들여 과실의 잠재력이 만개할 때까지 기다리는, 진정한 의미의 숙성을 거쳤다고 보기 힘들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우리로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맛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여름은 돌아오고 제 순서를 맞은 토마토는 슬금슬금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다. 기후온난화의 영향으로 “올해가 생애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자주 들리는 요즘, 무더위에 허덕이며 생각나는 유일한 음식은 바로 ‘냉국’이다. 단지 시원한 온도감 때문만이 아니라 냉국이 순간적으로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은 바로 그 ‘산미’에 있다.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잘 익은 토마토의 감칠맛과 상큼한 산미가 돋보이는 스페인식 토마토 냉국 ‘가스파초’를 소개한다. 여기에 시장에 얼굴을 속속 들이밀기 시작한 또다른 제철 과일 복숭아를 곁들여 여름을 버텨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보자.
가스파초(Gazpacho)는 잘 알려진 대로 ‘스페인식 차가운 토마토 수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스페인 무더운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 경험상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는 ‘생각만큼’ 자주 접하진 못했다. 이유는 아마도 지난번 ‘감자 토르티야’ 편에서 이야기했듯 스페인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 극단적으로 뚜렷한 지역색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 여름을 버티는 음식으로 가스파초를 꼽는데 큰 이견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스페인 요리책의 레시피를 가져왔다.
재료
- 잘 익은 토마토 1.5kg, 양파 반 개, 오이 1개, 파프리카 1개
- 딱딱하게 굳은 빵 250g, 올리브 오일 1컵, 식초 2큰술, 소금, 찬물과 얼음
- 플레이팅을 위한 잘게 썬 야채
가스파초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갈아내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요리답게 수박이나 체리, 심지어 딸기 등을 넣고 만든 다양한 변주가 허용되기도 한다. 가스파초를 한 번도 못 먹어봤더라도 기본적으로 위 재료들을 곱게 갈아내기만 하면 되니 맛을 상상해 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스파초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요리인 동시에 맛의 관점에서는 가장 어려운 요리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수준 높은 당신이라면 그렇게 느껴야 한다. 레시피의 핵심이 테크닉이 아닌 재료의 선정과 맛들의 상호작용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맛 공식을 먼저 세워보면 이렇겠다.
가스파초
재료 = (잘 익은 토마토, 야채) + (빵, 올리브 오일, 식초)
맛 = { 감칠맛(토마토, 야채) + 산미(토마토, 식초) } + 지방(올리브 오일)
먼저 이 레시피의 첫 번째 포인트는 빵과 올리브 오일에 있다. 가스파초를 토마토 오이 주스가 아닌 가스파초로 만드는 것은 빵의 전분을 통해 올리브 오일을 야채 주스와 함께 유화시키는 데에 있다. 스페인에서는 sopako라는 수프를 위한 빵이 따로 있긴 한데 맛보다는 기능에 그 의의가 있기에 우리는 그냥 식빵을 써도 괜찮다. 말랑한 상태의 빵도 상관은 없으나 가능하면 구수한 향이 나도록 한번 바짝 구워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시피를 다시 살펴보면 올리브 오일을 ‘약간’ 형식적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무려 ‘한 컵’이 들어간다. 올리브 오일이 가진 지방의 풍미가 요리에서 맛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오늘의 요리의 핵심이 식재료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준비된 재료를 잘 갈아내기만 하면 되는, 온전히 원물의 힘에 기대는 요리이기에 그래서 오늘 요리의 시작은 사실 ‘주방’이 아닌 ‘시장’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토마토가 그렇게나 중요하다면 “어떤 품종의 토마토를 사용할 것인가?”부터 “어떤 상태의 토마토를 사용할 것인가?” 까지 다층적인 차원에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산미에 하이라이트를 더해 줄 식초도 함부로 고를 수 없다. 스페인에서는 보통 향이 풍부한 헤레즈 식초를 사용한다. 순전히 ‘산미’를 추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일반 양조식초를 넣는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겠으나 오늘 요리의 맛의 주연이 산미에 있다는 점에서 공장 식초에 그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맛의 상석을 너무 가볍게 내어 준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열심히 좋은 재료를 골랐으면 그 주연을 빛낼 조연도 섬세하게 골라보자. 복숭아나 사과 등 다양한 특산물을 통해 만든 식초들이 많으니 원하는 풍미를 취향껏 덧붙여보면 좋겠다.
이렇게 정성껏 고른 재료들을 믹서에 넣고 갈아낸다. 믹서에 갈 때는 다 갈린 것 같더라도 고운 결과물을 내도록 내가 생각한 것보다 충분한 시간을 주도록 한다. 결과물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향긋한 충주 홍금향을 큐브로 올려 마무리했다. 식전 입맛을 돋우는 전채 대용이라면 계란이나 하몽을 얹어도 좋겠다. 그러나 한 통 가득 만든 뒤 냉장고에 넣어두고 냉국이나 주스 마시듯 편하게 들이켜자. 향이 더해진 식초와 토마토의 부드러운 산미로 시작해 소금이 열어주는 두드러지는 토마토 감칠맛과 야채 풍미. 무엇보다 구수한 빵과 풍성한 올리브오일이 맛의 전반을 뒤에서 받쳐준다. 요즘 같은 무더위 외출에 지쳐가는 내내 생각 날 것이다.
가스파초는 카테고리적으로 ‘차가운 수프’로 분류된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 더 넓혀서 바라보면 온도에 관계없이 수프는 주스나 소스와 같은 ‘액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형체가 없는 액체라는 것은 조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내포한다. 어떠한 테크닉이나 플레이팅으로 눈 가림 할 수 없이, 오로지 혀 위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 숨을 곳 없이 요리사의 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다룬다는 것은 반대로 어떠한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백이면 백 제각기 다른 취향을 어떤 누군가가 규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다. 프랑스 주방의 권력이 소스 담당, 소시에르(Saucier)에게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시에르가 뽑아내는 실체 없는 수십 가지 소스들은 오로지 한 명의 권능에 기대 그려진다. 즉, 누군가가 소스를 ‘잡는다’는 것은 곧 그 주방의 실력과 철학을 대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렌치의 영혼이 소스에 있다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이는 “프랑스는 소스가 맛있다”와는 사실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소스에 영혼을 두기로 했다는 말은 곧, ‘맛’을 ‘상상력’과 동의어로 바라본다는 것을 함축한다.
요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테크닉? 원재료? 상상력? 그것도 아니면 철학? 비루한 경험에서 나온 의문점이 참 오래도 내게 묻는다. 가끔 그 물러 터진 벌레 먹은 토마토를 떠올린다. 극한의 환경에서 채소나 과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성 방향 물질을 생성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었던 이 방향 물질은 우리에게 풍성한 향이라는 뜻밖의 선물로 돌아온다. 최고급 와인이 기름기 넘치는 비옥한 땅보다 포도의 잠재력이 만개할 수 있는, 목숨만 겨우 유지되는 척박한 땅에서 탄생할 수 있는 이유다. 삶을 다음 차원으로 인도하는 힘은 안락한 부귀보다 지난한 고통의 시간에 스며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내가 보고 느낀 게 최소한 내게는 정답이라 우기며 살까 싶으면서도, 애초에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 단 하나라도 있긴 한 건지, 사실 나는 아직도 가끔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