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엄마랑 제주보름
하이디가 좋아할 것이라는 핑계로 내가 갖고 싶어 사는 장난감이 있다. 레고다. 설명서를 따라 작은 브릭들을 하나의 모형으로 만드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만들고 싶은 모형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완성해가는 매력은 상상 이상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한 살 어린 남동생과 그리 많지도 않은 브릭을 가지고 나는 경찰서 너는 경찰차, 나는 배 너는 비행기를 정해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브릭 하나만 떼어주라 사정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의논을 하며 완성했다.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댄 모형이 아직 놀이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실수로 부서지던 날에는 그렇게 애통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만들면 된다고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달랬지만 나와 동생은 알고 있었다. 설명서 없이 만든 우리만의 모형을 똑같이 다시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하이디는 나처럼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설명서를 따라 만들기보다는 마음대로 만들기를 더 좋아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엄마가 근사한 모형을 만들어주면 그걸로 피규어를 이용해 역할놀이를 하는 거다. 얼마 전까지도 하이디 책상 위에는 레고로 만들어진 학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엘사, 안나, 크리스토프 아리엘, 신데렐라 등 레고 피규어들이 다니는 학교놀이를 위해서였다. 나는 학교 놀이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새로운 모형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학교놀이는 쉽게 끝이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같이 즐거울 방법을 찾았다. 학교를 조금씩 개조하는 거였다. 요리수업이 새로 생겼다고 하면서 요리실을 만들고 학교 축제에 공연을 해야 한다고 하며 무대를 만들었다. 새로운 상황이 더해지며 학교 놀이는 더욱 재미있어지고 나의 만들기 욕망도 채울 수 있었다.
몇 달 전 제주에 레고 조형물을 전시하는 브릭캠퍼스가 문을 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그 소식을 확인하는 순간 내 눈은 반짝였다. 서울에도 비슷한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문을 열었다고 하니 새로운 전시물이 많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하이디를 설득해서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레고 박물관 가는 건 어때?" "만들기도 할 수 있어?" 레고 박물관에 가서까지 역할놀이를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응!" 답을 알고 한 대답은 아니었다. 만들기 공간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나는 덜컥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하이디는 바로 가겠다고 했다. 있을 거야 있겠지 있어야만 해 주문을 외우며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박물관 마지막에 만들기 공간이 있었다. 거짓말쟁이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
브릭캠퍼스는 숙소에서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종점인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서 또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아이와 단둘이 택시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일까?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은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제주에 여행을 왔냐로 시작된 대화는 제주에 살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커야 하는데 제주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것이 기사님의 주장이었다. 누구나의 로망이 아닐까요라는 나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기사님은 쐐기를 박으신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며 고민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제주 토박이 기사님도 아이들 때문에 제주로 이사를 오셨다는 기사님도 독일에서 오랜 시간을 살다가 오셨다는 기사님도 결론은 같았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 제주에 올 때마다 흔들리는 내 마음에 더 센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기사님들. 그래서 더 택시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더 많은 흔들림을 기대하면서. 물론 몸이 편한 건 당연하고.
기사님도 모르고 계셨던 브릭캠퍼스에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도착했다. 입구에는 레고 모양의 햄버거를 파는 식당이 있어서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로 구경을 하겠다는 하이디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지금 점심시간이라서 점심을 먹고 와야 표를 판데." 아직까지는 엄마의 거짓말이 통하는 여덟 살. 입을 쭉 내밀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거짓말에 속기는 했지만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계속 삐침 모드다. 햄버거 모양이 예뻐서 사진을 찍는데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고 화장실에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시위다. 평소에는 한 번에 다 마시지 못하게 하는 제법 큰 오렌지 주스도 한 번에 다 마시게 해줬지만 오히려 더 달라고 난리다. 험난한 관람이 예상됐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모든 작품이 다 신기한 마냥 신난 어른아이가 됐고 하이디는 빨리 창작품 만들기가 하고 싶어 전시 작품들은 다 시큰둥한 아이어른이 돼 버렸다. 이 작은 브릭으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정형화된 브릭들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작품 하나하나 다 근사했고 하나하나 다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시장 입구에는 '보다와 관찰하다는 다르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본다'는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면 '관찰한다'는 것은 만나는 것이라며 관찰을 통해야만 대상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해설이었다. 이 설명은 레고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 관찰하고 싶게 했다. 하지만 하이디는 내게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만 허락했다. '본다'와 '관찰하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사진을 찍는 횟수만 늘었다. 나중에라도 작품을 만나겠다는 의지였다. 이미 삐딱선을 탄 하이디의 마음에 계속 사진을 찍는 엄마가 좋게 보일 리 없다. 박물관에서는 작품을 관람해야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며 급기야 훈계를 늘어놓는다.
매번 하이디에게 조금씩 양보했던 시간들. 이번만큼은 양보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에 기념품 가게가 있을 텐데 기념품을 사고 싶으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개' 작품들에게는 이름을 지어줘야만 한다고 하고,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작품은 따라 해봐야 한다고 하고 디즈니 성 작품에서는 미키와 미니를 찾아보라고 하며 내가 멈추고 싶은 순간마다 미션을 부여했다. 100%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절반 이상의 만족감을 남기고 마지막 창작 공간에 도착했다. 가만히 멈출 줄 몰랐던 하이디의 발이 한 군데 고정이 됐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름 만들기에 도전한 거다. 평범한 것에는 쉽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하이디. 이름 만들기도 평범하지 않다. 브릭 색을 통일하는 법이 없다. 알록달록 제일 화려한 이름을 남긴다.
"내 꿈은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 찍기 싫어." 삐딱선 하이디는 멋진 작품 앞에서 한 번만 웃어주라고 해도 웃어주는 법이 없었다. 사진작가가 아닌 모델이라고 아이의 말을 정정하고 싶었지만 괜한 짜증을 더할까 입을 닫았다. 결국 기념품 가게에서 레고 하나를 사고 나서야 하이디는 미소를 지었다. 선물의 강력한 힘이 씁쓸했다. 선물도 안겼으니 이제는 엄마 마음대로다. 함덕으로 돌아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모래사장으로 나섰다. 오늘은 모래그림 대신 파도 피하기 놀이로 바다를 만났다. 두 볼이 얼얼해질 즈음 마트로 향했다. 텅 빈 냉장고를 채울 시간이다. 두 손 무겁게 장을 본 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열선이 깔려 있는지 정류장 의자가 따뜻하다. 엄마와 딸 단둘이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 옆에 엄마와 아들 단 두 사람이 앉았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나눈다. 숙소에서 본 적이 있는 친구란다. 아이들의 인사에 엄마들도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보름이라면 제주에 한 달 여행을 온 같은 숙소에 묵는 일행이었다.
따뜻한 정류장 의자에서 시작된 인연은 우리 집으로 이어졌다. 동갑인 아이 둘은 레고 만들기로 한마음이 됐고 동갑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 둘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행복한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에서 긴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공부를 더 시켜야 하는지 어떤 과목을 앞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뛰어놀며 더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오늘 만난 성이 엄마도 그랬다. 그녀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으로 성이를 키우고 있으며 대안학교에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다수가 가는 길을 벗어난 선택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의 정답은 없지만 아이 행복을 위해 용기를 낸 엄마의 선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나 역시 고민했지만 주저하며 가지 못한 길이었기에 그 선택을 이끈 용기가 더 크게 와 닿았다.
성이 엄마는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입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계속 불안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 내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걷고 있는 나도 불안하다고. 아이를 정형화된 틀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아닌지 앞서 가는 아이들 속에서 내 소신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아이의 미래를 놓고 불안하지 않는 엄마는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불안하되 불안을 이겨내는 엄마는 있을 거라고. 나도 성이 엄마도 단단한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마치 오래 알아왔던 것처럼 다정하게 레고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흔들리는 마음은 균형을 찾는다. 그저 바라보지 않고 관찰하며 저 웃음소리를 놓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의 불안을 이겨내는 힘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