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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ul 04. 2018

워킹맘의 다이어트

나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아침은 샐러드와 커피, 점심은 먹고 싶은 음식저녁은 우유에 탄 미숫가루를 먹는다. 다이어트는 여자의 평생 숙제라지만 이렇게 작정한 다이어트는 처음이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례 술자리 없이 한 주를 보낸다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가급적 야식을 먹지 않기,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기라는 말로 다이어트를 흉내만 냈을 뿐이다. 물론 '가급적'이라는 말마저 잘 지켜질 리 없었고. 


신부라면 누구나 다이어트를 한다는 결혼 전에도 거의 한 달 동안 미열을 동반한 감기에 시달리며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다이어트가 절실해진다는 출산 후에도 모유 수유를 이유로 다이어트를 하지 못했고 모유 수유가 끝나자마자 회식 러시는 시작됐다. 게다가 삼시세끼 빵만 먹으라면 먹을 수 있을 만큼 빵을 좋아해 밀가루 끊기는 도전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휴직한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다. 1주일에 2~3번 헬스장을 찾았다. 그동안 고질적으로 아팠던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싶다는 이유 외에 복직할 때 휴직 기간을 알차게 보냈음을 외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트레이너는 나를 볼 때마다 이야기했다. 운동도 좋지만 음식 조절까지 병행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하지만 식이요법은 거부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주부가 되어 요리를 하며 지내야 하는데 그 요리를 먹지도 못하면 요리를 할 의지가 생길까. 게다가 제일 행복한 기간에 먹는 낙을 어찌 뺏길 수 있을까. 


트레이너의 기대보다는 더뎠지만 체지방은 줄고 근육량은 늘었다. 실제 몸무게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청바지는 사이즈를 줄여 새로 사야 했다. 고생하며 운동한 보람이 있었다. 문제는 복직이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살이 빠졌다고 해서 목표는 달성했지만 운동할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집에 있는 실내 자전거도 타고 스트레칭도 하겠노라 결심했지만 다시 빡빡해진 생활, 피곤해진 몸의 리듬은 의지를 쉽게 무너뜨렸다. 


겁이 났다. 새로 산 청바지를 다시 못 입게 될까 봐. 다시 휴직 전의 몸상태로 돌아가게 될까 봐. 내가 지금을 위해 흘린 땀이 얼만데 악악 곡소리를 낸 게 얼만데 그 시간들이 증발할까 봐 겁이 났다. 운동할 힘은 없고 원래대로 돌아가기는 싫고. 답은 하나였다. 그동안 외면했던 다이어트. 


사실 처음부터 다이어트를 떠올린 건 아니었다. 6시 칼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7시 30분. 나를 보자마자 놀자고 하는 아이 때문에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먹게 되는 저녁. 나를 기다렸을 아이가 안쓰러워 저녁을 건너뛰게 되면 배가 고파 찾게 되는 야식. 늘 칼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퇴근이 조금이라도 더 늦어지면 밥을 먹기는 더욱 애매한 상황이 돼버렸다. 회사에서 밥을 먹고 출발하자니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싫었다. 저녁을 안 먹거나 야식을 먹거나 하는 불규칙한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아예 안 먹는 것보다는 미숫가루라도 먹으면서 끼니를 거르지 않고, 미숫가루는 쉽게 먹을 수 있으니 회사에서 출발하기 전에 휘리릭 먹으면 집에 와서는 아이랑 곧바로 놀 수 있고, 건강해진 몸도 유지하고, 이왕 살이 더 빠지면 보기에도 더 좋고. 다이어트에는 1석 4조의 효과가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 먹으라는 남편이나 어머니의 말에 간단히 무언가를 먹었다거나 다이어트를 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씁쓸함을 맛보기보다 당당하게 미숫가루를 먹었다고 대답할 수 있으니 스스로도 떳떳했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더 좋지 않겠나.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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