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수집가 Jul 11. 2018

학교 안 갈래

"학교 안 갈래." 

화장대 앞에 선 내게 아이가 건넨 첫 아침 인사였다. 쿵. 엄마의 마음은 저 아래로 떨어지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10시 회의, 오전까지 주겠다고 했던 피드백 두 개, 퇴근 전에 마무리해야 할 원고 하나. 전날 출장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던 터라 다음 날로 미룰 수 없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말한다. 학교를 안 가는 건 두 가지 경우라고. 하나는 아플 때, 하나는 여행 갔을 때. 콧물만 훌쩍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기침을 한다. 들어도 거짓 기침. 감기에 걸렸다는 아이에게 나는 말한다. 열이 펄펄 끓어야 학교를 안 갈 있다고. 


"학교 안 갈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아이. "그럼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된다는 아이의 대답에 나는 설명을 시작한다. 오늘 회사에서 친구들하고 토론을 하기로 해서 친구들이 엄마를 기다릴 거야. 그리고 하이디 선생님은 안 무섭지만 엄마 사장님은 무서워서 회사를 안 간다고 하면 화내실걸. 또 엄마 오늘 할 일도 많아. 일을 잘하는 친구가 왜 일을 잘하나 소개하는 이야기를 써야 하고 이건 재미있고 저건 재미없고 친구들에게 엄마 생각도 이야기해줘야 해. 


"학교 안 가고 싶어."

이쯤 되면 체념을 해야 하는데, '쳇'하는 반응과 함께 '그래, 그럼 가지 뭐.'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 하이디는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를 한다. 째깍째깍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하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차례다. 빠른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방적인 내 이야기만으로 설득을 하려 했는데 실패. 왜 학교에 가기 싫은지를 물었다. 


개구쟁이 남자 친구 이름을 말한다. 그 친구가 계속 장난을 쳐서 싫단다. 엄마가 혼을 내줬으면 좋겠단다. 엄마는 오늘 회사에 가야 해서 그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없고 그럼 혼낼 수도 없으니 엄마가 학교에 갈 수 있는 날 같이 만나러 가보면 어떨까 방법을 제안했다. 이제는 눈물바람 생떼 쓰기 작전이 등장하겠구나 짐작하고 있는데 아이는 다른 이유를 말한다. "창의과학놀이터 하기 싫어." 그래, 아이의 진심은 거기에 있었다. 모둠별 토론 수업인 창의과학놀이터 수업이 하기 싫은 것. 


3년 동안 만나고 있는 공동육아 친구들에게는 척척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선생님의 모든 질문에 손을 번쩍 드는 아이. 여러 명의 친구가 대답을 한 뒤 제일 마지막에 자신의 순서가 돌아와도 새로운 생각으로 자신만의 답을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이면 달라졌다. 선생님도 의아해하셨다. 발표를 하는 하이디와 친구들 속의 하이디 모습이 달라서. 친구들 속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안된다고 할까 봐 의견을 낼 수가 없단다. 틀려도 달라도 다 괜찮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줬지만 하이디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의 주제를 물었다. '크기가 다른 공 분류하는 방법'이란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아이의 생각을 묻는 것이 먼저지만 시간이 없었다. 공 크기에 맞게 종이에 구멍을 뚫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작은 공이 빠져나갈 구멍부터 뚫으면 된다고. 아이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내가 말한 방법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시간은 없었다. 휘리릭 머리를 묶어주고 휘리릭 집을 나섰다. 


그날 저녁. 하이디에게 물었다. 오늘은 하이디의 의견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냐고.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종이컵 높게 쌓기'로 주제가 바뀌었고 자신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는데 하이디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친구들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그랬어." 친구들이 안된다고 할까 봐 의견을 낼 수 없어 속상하고 분명 본인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인데 친구들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니 속상하고. 속상함이 돌고 도는 시간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 "창의과학놀이터 하는 날은 학교 안 갈 거야." 


하이디가 가는 길이 즐겁기를 바란다

안쓰럽다. 아이가 상황을 견뎌내고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응원해줄 수밖에 없어 안쓰럽다. 하지만 이럴수록 엄마는 단단해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제일 속상한 것은 하이디이기에 엄마마저 속상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일 수는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되지. 나는 너희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이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돌아올 금요일이 걱정됐다. 또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육아는 매 순간 정답 없는 문제로 나를 시험한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정답이 없는데 정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서. 정답이 없으니 내 답이 맞나 틀리나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하지만 이제는 어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은 하나의 문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 바른 답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이를 달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아이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아이와 함께 대화하며 아이의 마음을 살핀다면 조금씩 방향을 수정하며 바른 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정답이 없어서 오히려 더 즐거운 육아임을.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의 다이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