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수집가 Jul 29. 2018

내 방식대로 살면 안 돼?

하이디의 방학 첫날, 휴가를 냈다. 방학 동안 다니기로 한 학원 개강이 방학 둘째 날부터여서 붕 뜬 하루가 생긴 거다. 때마침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치원 단짝 친구도 방학. 시원한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만 해도 오늘 그림일기는 친구 만난 것을 쓸 거라며 의기양양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그저 뒹굴거리고만 있다. 방방 뛰기를 세 시간. 지쳤겠다 이해는 되지만 엄마는 잔소리를 한다. 그림일기 안 써? 수학 문제는 안 풀어?


그림일기는 매일 안 써도 된다고 선생님이 그랬다며 배짱이고 수학은 하루 정도 안 해도 괜찮다고 배짱이다. 그림일기는 한 발 양보. 수학은 쉽게 양보가 안 된다. 1학기 복습 문제도 아니고 아직 더하기 3 연산 문제를 풀고 있는데 자꾸만 미루다가는 영영 뺄셈을 풀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다른 아이와의 비교는 가급적 안 하려고 하고 학과 공부는 학교 수업 진도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엄마이고 싶지만 의지는 나약하다. 며칠 전 하이디 친구 엄마들이 2학기 수학 예습은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듣고 조급해졌다. 


친구들은 2학기 수학 익힘책도 미리 풀어본데. 벌써 세 자릿수 덧셈을 하는 친구도 있데. 10분도 안 걸리잖아. 빨리 풀고 쉬면 되잖아. 어렵지도 않은데 왜 안 한다는 건데. 쏟아내고 싶은 잔소리가 차곡차곡 쌓이지만 심호흡을 한다. 참지 못하고 쏟아낸들 아이의 마음을 할퀴어 반항심만 자극할 뿐이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후회할 테고. 대안은 당근 전략이다. 물론 이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라진 탭을 되찾기 위해 방학 때 더하기 10까지 덧셈 공부를 하겠다고 했는데 가능하겠냐고 묻는다. 수학은 하기 싫지만 탭은 빨리 되찾고 싶은 하이디. 오늘 수학을 하지 않아도 탭을 찾을 수 있다고 화를 낸다. 그리고 덧붙인 말, 내 방식대로 살면 안 돼?


아니, 여덟 살이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말인지!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고 살고 싶은 방식을 써보라고 했다. '내 방식은 12시에 자고 1시에 일어나는 거다. 놀고 싶고 책도 읽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거다. 수학은 내일하고 엄마의 말 안 듣는 거다♡' 하루에 1시간만 자면서 놀고 싶고 책을 읽고 싶다는 하이디. 오늘만 네 방식을 따라주겠다고 했다. 수학은 양보하지만 너의 방식이니 책을 보라고 했다. 신나서 책꽂이로 간다. 그래도 책을 보는 거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의지와 실행은 늘 별개다. 특히나 마음이 먼저 앞서는 여덟 살에게는 더더욱. 12시에 자고 싶은 의지와 본인의 컨디션은 별개인 거다. 평소 자는 시간이 9시. 게다가 신나게 놀았으니 더 피곤할 터. 8시가 조금 넘었는데 졸리다며 어서 목욕을 하자고 한다. 마음이 너무 앞서 지키기 힘든 계획이었지만 자신만의 방식을 고민했다는 것에 고슴도치 엄마는 하이디가 대견하다. 물론 엄마 말을 안 듣겠다는 건 조금 괘씸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책상에 놓인 '내 방식대로 사는 법' 종이를 보더니 말한다. "엄마 이거 버리면 안 돼?"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확~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넣는다.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 말을 안 듣겠다고 한 것이 켕겼으리라 짐작했다. 조급증 엄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묻는다. "오늘은 수학할 거지?" 하이디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단단하지 못한 엄마는 기어이 수학을 포기하지 못했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엄마. 벌써부터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자 하는 딸. 조금 어이없고 실천 불가능한 방식이지만 그래도 딸의 주체성을 응원한다. 조금씩 실천이 가능한 방식으로 다듬어가다 보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멋지게 꾸려가게 되지 않을까. 아이가 자신의 방식을 다듬어가는 동안 나약한 엄마의 의지도 조금씩 더 강해지리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 안 갈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