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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Aug 18. 2018

여름방학이 끝났다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에 두 사람이 누웠다. 160cm에 아주 조금 못 미치는 사람과 120cm가 조금 넘는 사람. 두 사람의 체격에 비해 침대는 넓었지만 두 사람은 한 베개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갑자기 더 작은 사람이 조금 더 큰 사람을 밀어낸다. "저기로 가." 아니, 지금 두 사람이 같이 베고 있는 베개는 분명 조금 더 큰 사람의 베개인데 왜 주인이 밀려나야 하는 것인지. "가슴이 깨졌거든. 그래서 모서리에 부딪힐 수 있으니까 떨어지라고 하는 거야."


아이는 심술이 났다. 엄마랑 더 놓고 싶었는데 자야 한다며 침대로 끌려왔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8시. 엄마가 없을 때 하기로 했던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아이는 30분 동안 엄마랑 실랑이를 하다 고작 30분을 놀고 목욕을 한 뒤 침대에 누웠다. 9시면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눕는 것이 오래도록 유지된 우리 집 규칙. 분명 엄마랑 더 오래 놀고 싶으면 엄마가 퇴근하기 전에 숙제를 해 놓으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너라며 엄마는 아이를 탓했다. 


하루쯤 숙제 안 하면 어때, 하루쯤 늦게 자면 어때. 나도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 아이와 신나게 놀고 싶지만 알고 있다. 오늘 하루의 자유로 아이와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것을. 아이는 오늘에 만족하지 않을 거다. 엄마는 매일 8시 또는 더 늦게 집에 올 것이고 그때마다 놀 시간이 없다며 약속을 어기려 할 것이다. 점점 더 늦게 자는 아이, 점점 더 줄어드는 나의 휴식시간, 점점 더 늦게 일어나는 아이, 점점 더 촉박해지는 출근시간, 점점 더 쌓여가는 피곤. 연쇄작용이 두려워 규칙을 깰 수가 없다. 


나라고 왜 안쓰럽지 않겠는가. 지금은 방학. 엄마가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점심을 주는 영어학원 방학특강에 다닐 이유가 없었고 Only English 때문에 힘들어할 일도 없었고 학원 숙제도 없었을 거다. 게다가 하루 종일 놀다 지쳐 방학 숙제가 하고 싶어 지는 날들을 경험했을 거다. 학교에 방학 돌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영어학원 방학특강. 엄마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소신을 버린 선택이었다. 소신보다는 점심이 우선이었다. 


영어학원마저 방학이었던 날, 제주 판포포구에서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밥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격렬하게 노는 것도 그저 뒹굴뒹굴 심심하게 노는 것도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습보다 제대로 된 놀이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고개만 끄덕일 뿐 실천이 어렵다. 어른이 퇴근해야만 마무리되는 아이의 일과. 아이는 맞벌이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른의 시간표를 강요받는다. 게다가 아이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놀이도 아니다. 그저 엄마랑 조금 더 놀고 싶을 뿐이다.  


나의 복직과 함께 아이는 짜증이 늘었다. 아침에는 엄마마저 회사에 가버린다고 짜증. 밤에는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짜증이다. 다그쳐도 보고 다정하게 달래도 보지만 짜증은 반복된다. 부서진 마음이 발부터 가슴까지 차곡차곡 쌓였다고 말하고 조각조각 마음이 깨졌다고도 한다.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저 조금 더 엄마랑 함께 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더 나은 엄마, 더 좋은 엄마를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조금 더 곁에 있어주는 엄마를 바라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그렇게 영어학원에 발이 묶인 채 아이의 방학은 끝났고, 엄마의 후회는 늘었다. 




<여덟 살 하이디의 일기>

영어학원 방학특강에도 방학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제주로 떠났고 아이는 일기를 남겼다. 


매일이 최고일 수는 없지만 

아이가 즐겁게 일기를 쓸 수 있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특별한 여행의 즐거움 못지않게 

사소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이가 즐겁게 일기를 쓰려면

일기를 쓰는 저녁 시간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요즘은 짜증이 늘어 참 쉽지 않다. 

기승전 엄마와 아빠의 늦은 귀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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