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수집가 Sep 02. 2018

엄마 꿈은 뭐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 딸 **아

너의 나이 지금 세살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엄마를 바라 볼때면 

너의 맑고 순수함이 엄마 가슴 가득히 채운다


아빠께 안겨서 뽀뽀하고 속삭이는

장난스레 귀여운 몸짓에서 때묻지 않는

밝음을 본다


힘껏 소리치고 까르르 웃는 너의 천진한 동심으로 

아련히 잊어가는 엄마의 옛날을 찾는다


아이들과 어울려 신나게 뛰노는 너의 모습에서 

싱싱하게 물오르는 팔월의 푸른 숲을 느낀다


그림 공부하느라 하얀 백지에 온통 동그라미

색칠한 너의 손짓에서 피카소 아저씨의 

가능성을 느끼며

엄마의 너의 미래를 꿈꾼다


고운 목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빙글 빙글 돌아가며 나비마냥 춤추는

너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우리집은 행복으로 일렁인다


엄마는 소망한다

지금 지니고 있다 너의 모든 것

맑음, 밝음, 천진함, 건강함

끝없는 가능성과 고운 감정을 사랑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거라

-  엄마  -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 살부터 엄마의 詩는 내 방에 걸려 있었다. 20살, 엄마 곁을 떠나 혼자 살게 된 좁은 원룸에서도 詩는 나를 따라왔다. 엄마가 고마웠던 밤 이 를 읽으며 고맙다 되뇌었고 엄마에게 짜증냈던 밤 이 詩를 읽으며 미안하다 되뇌었다. 詩는 엄마처럼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했고 다독였고 때로는 나무라기도 했다. 내게 처음으로 글이 주는 힘을 알려준 엄마의 詩. 이 詩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것이 참 좋았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몰아내고 좋은 이야기는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 번뜩이는 생각이 날 때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도 글을 썼다. 어느 순간 글은 삶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고 책을 내고 싶기도 했다. 버킷리스트에는 늘 글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저 바람일 뿐.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글쓰기는 특별히 더 좋아하는 취미일 뿐이었다. 


어느 날 다섯 살이 된 아이가 물었다. "엄마 꿈은 뭐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신나는 율동을 알려줘서 선생님이 되고 싶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고 싶어 장난감 개발자도 되고 싶고 만화영화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처럼 의사도 되고 싶다며 신나게 자랑을 한 뒤였다. 아이의 엉뚱하고 사소한 질문에도 늘 최선을 다해 대답했던 내가 이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미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가졌고 담당하는 업무도 재미있는데 그럼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꿈을 이야기하기란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다섯 살 아이 하나도 버겁게 키우고 있는 지금 꿈은 내게 사치가 아닐까. 아이의 질문에 어떤 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무엇을 하는 것'. 대체 무엇을 해야 꿈이 될 수 있을까. '무엇'에 사로잡혀 생각은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다 큰 어른이 꿈 좀 없으면 어떠냐며 외면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이 좋아 일주일 내내 내게도 꿈을 되물었다. 멈추지 못한 생각은 '무엇을 좋아하느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글'을 떠올렸다. 


고 3 수험생일 때도 글을 썼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도 글을 썼다. 엄마가 되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썼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의지로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분명 좋아하는 일, 글은 내 꿈이 되었다. 


늘 쓰던 글에 꿈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뿐이었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글쓰기 강좌를 찾아 듣고 글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업무에서도 제도를 잘 기획하는 직원이 되고 싶었던 바람에 기발한 표현으로 제도 홍보 역시 잘하는 직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더했다. 그 바람은 여기저기로 불어 내게 글 쓰는 직무를 갖게 했다. 6년 만의 부서 이동이었다. 사내방송 제작을 하게 되며 방송 원고를 쓰는 것 역시 내 업무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니 내 이야기가 더욱 쓰고 싶어 졌다. 회사에서 쓰는 글이 늘어나는 만큼 집에서 내가 쓰는 글도 쌓여갔다. 쓰면 쓸수록 글을 쓰는 것은 더욱 좋아졌다. 


아이의 책가방에 간식과 함께 넣어주는 쪽지 편지

시작은 엄마의 詩였다. 세 살 꼬마를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한 엄마의 詩. 내 아이에게도 나의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맛보고 있는 글쓰기가 주는 행복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아이에게 쪽지 편지를 쓴다. '비 오는 날이야. 비 오는 날은 길도 미끄럽고 사람들이 모두 우산을 쓰고 다녀 앞을 보기도 힘들어서 걸어 다닐 때 더 조심하자!'의 사소한 당부부터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회사에서 촬영하며 많이 피곤해서 그랬어. 하이디 잘못이 아닌데 말이야. 하이디가 이해해줘~'의 사과까지. 매일 아침 글에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전하고 있다. 


엄마에게서 시작된 내 꿈은 아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엄마의 손길로 어른이 된 나는 아이로 인해 더 나다운 나로 다듬어지고 있다. 멋진 엄마이자 행복한 나를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꿈을 향해 산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에게 당당하게 대답한다. "엄마는 글을 쓰는 것이 참 좋아. 그래서 엄마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여행: 2. 데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