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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책이 나왔다

<퇴근할까 퇴사할까> 출간

by 여유수집가

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글을 쓰다 방명록에 도배되는 스팸글을 해결하지 못해 네이버 블로그로 자리를 옮긴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즈음부터는 브런치로 옮겨와 글을 썼다. 브런치가 좋았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나를 '작가'로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남겨진 타인의 댓글에는 별다른 칭호가 없었는데 브런치에 남겨진 댓글에는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 것을 보며 괜히 설렜다. 버킷리스트 상위에 자리하고 있던 '책 출간하기'가 이뤄진 것만 같았다.


#1. 출간 제의를 받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복직을 하고 정신없던 2018년 여름, 브런치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브런치에 올린 내 글을 보고 출판사 마케터가 출간 제의를 해온 것이다. 결혼,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동시대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공감과 위로, 그리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설렜다. 마케터, 편집자와 함께 미팅을 하고 계약 내용을 조율하며 그들이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에는 물결이 일었다. 새롭게 써야 하는 글이 많은 상황에서도 이미 완성된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목은 어떻게 하지? 어떤 컨셉의 책이 될까? 회사에는 어떻게 알리지? 그렇게 둥둥 허공을 떠다니던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땅에 두 발을 디뎠다.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2. 함께 글을 쓰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도 자신이 없어서도 출판사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이미 추진하고 있던 공동출간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휴직 기간 나는 퇴사학교에서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라는 강좌를 듣게 됐다. 공식적인 강좌는 한 달 후 종료됐지만, 그중 몇몇은 한 달로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글쓰기를 이어갔다. 주 1회 각자가 쓴 글을 공유하고 서로의 글에 피드백을 남기고 그 피드백을 반영해 글을 수정하는 모임이었다.


"이왕 쓰는 거 책을 내면 어떨까요?" 멤버 중 한 명이 제안을 했다.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책을 내던 내지 않던 글 쓰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높더라도 목표를 가져보기로 했다. 자유 주제를 하나로 모으고 주제에 맞춰 글을 썼다. 혼자 세운 목표와 함께 세운 목표는 달랐다. 글을 쓰기 싫은 순간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꾹 참고 써야 했고, 글에 자신 없던 순간 좋은 점을 발견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 글은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었다. 함께 일구는 성장. 너무 값진 시간을 놓을 수가 없었다.


#3. 출간 계약을 체결하다

봄에 시작했던 우리의 이야기는 가을의 중반에 이르러서 결말을 맺었다. 사실 지쳐있던 순간이었다. 그리 많은 편의 글은 아니었지만 퇴고를 거듭하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고, 휴직 중이었던 사람들은 복직을 했고, 누군가는 직무를 옮겼고, 누군가는 퇴사를 했다. 뜨거웠던 우리의 글쓰기 방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출간을 제안했던 멤버가 잔잔해진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다. 나도 따라 돌을 던졌다. 출간 제의를 마다하고 남은 이 프로젝트를 꼭 완성시키고 싶었다. 함께의 가치를 결과로 드러내고 싶었다. 이미 뜻을 합친 사람들. 느슨해졌던 의지가 팽팽해졌다.


역할을 나누고 기획서를 쓰고 홍보 이미지를 만들고 출판사를 조사하고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모든 출판사가 우리 글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거절을 받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받는 거절 메일은 반갑지가 않았다. 그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는 서로가 있어 낙담은 짧게 의지는 굳게 가질 있었다. 드디어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예비 작가들은 작전회의를 하고 마음을 졸이며 편집장을 만났다. 모든 것은 기우였다. 편집장은 우리 의견을 대부분 수용해주었고 계약은 그 자리에서 바로 체결이 됐다.


#4. 드디어 책이 나왔다

서로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퇴고를 몇 번 거친 글이었지만 편집장의 눈에는 또 달리 보였다. 방향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몇 번의 수정이 더 필요했다. 누군가의 피드백을 받고 그 피드백을 반영해 글을 수정하는 과정은 글쓰기 강좌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어져 왔던 일. 피드백의 주체가 편집으로 바뀐 것뿐 출간 계약 전과 후가 그대로였다. 진짜 책이 나올 수 있을까. 흑백의 글씨들만 가득하던 모니터에 드디어 연보랏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지 시안이었다. 시안을 보고 나서야 내 이름이 박힌 책이 나올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노트북 속에만 존재하던 책이 오늘 실물로 내 손에 만져졌다. 작년 11월에 계약을 체결하고 5개월 만의 일이다. 함께 책을 내보자고 결심한 것이 작년 3월 말이니 거진 1년 만이기도 하다. 막 제본이 끝난 따끈따끈한 책. 종이와 잉크 냄새마저 그대로 남아 있다. 빠르면 주말에는 서점 매대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실물을 손에 들고서도 버젓하게 찍힌 내 이름을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좋기도 어색하기도 떨리기도 걱정되기도 한 복잡 미묘한 마음. 그래도 한결같은 한 가지는 진심을 담은 우리의 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 떨려. 주말에 서점에 가면 또 어떤 마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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