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회사에서 주관하는 직업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게 됐다. 큰 뜻이 있지는 않았다.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출산으로 미뤄둔 대학원 졸업 논문도 써야 했다. 주변을 살필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던 그때. 부서에 지원자가 1명도 없다는 권유 혹은 지시에 의한 참여였다. 그나마 주중에는 친정에서 아이를 봐주고 계시니 귀가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등 떠밀려 시작했지만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동료 직원들의 소개를 보고도 나를 멘토로 선택한 대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크게 보면 회사의 얼굴이기도 했고 작게 보면 회사 생활 혹은 직업에 대한 멘티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줘야 하는 상대였으니까. 하고 나니 좋았다. 멘티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멘티들을 만나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멘티들에게서 얻는 것이 더 많았다. 내게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회사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동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 평범하게 여겼던 회사원이라는 직업이 조직문화기획자가 되어 존재감을 빛내던 순간. 이제 막 엄마가 되어 엄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상황임에도 꿋꿋하게 일을 지켜나가고 있는 워킹맘으로 보이던 모습. 자극이 되었고 활력을 주었고 열정을 갖게 했다. 등 떠밀려 시작했던 시즌1을 지나 시즌2와 시즌3은 스스로 지원하게 됐다.
멘토링 프로그램이 종료된 뒤에도 두세 번 정도 더 만났던 멘티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대학생 시절의 고민에서 소식은 끊겼다. 제일 궁금했던 사회로 나왔다는 이야기는 정작 들을 수 없었다. 신입사원들을 볼 때면 가끔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바쁘다는 이유와 멘티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먼저 연락을 해볼 시도조차 안 했다.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 여겼다.
2019년 4월, 2011년에 인연을 맺었던 멘티에게서 연락이 왔다. 발단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카톡 프사를 보며 내 안부를 확인했다는 멘티는 <퇴근할까 퇴사할까> 출간 소식을 본 뒤 책을 읽고 연락을 했노라 카톡을 보내왔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스승과 제자 사이는 아니지만 나보다 더 나은 멘티임에는 분명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나를 기억해주고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 멘티. 세무사가 되었다며 제일 궁금했던 소식까지 들려주었다.
오늘의 카톡 프사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의 인연에 나온 구절이다. 보통 사람이었던 나와는 달리 현명한 사람이었던 멘티. 멘티 덕분에 내가 책을 낼 용기를 가졌음이 더욱 뿌듯했고, 다시 한번 마음을 나눈 소중한 인연의 긴 끈을 실감하게 됐고, 월요일 지친 퇴근길이 따뜻한 응원으로 행복해졌다. 나도 현명한 사람이 되어 소중한 인연을 살려낼 수 있기를. <퇴근할까 퇴사할까> 책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