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사에서 뭐했어?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저녁 상봉 이후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 아이는 시크하게 '몰라, 까먹었어'라고 할 때도 많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내 대답 후 다시 이어질지도 모르는 아이의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어떤 방송을 만들지 주제를 정하느라 혼자서 고민하다가 친구들하고 같이 고민했어. 이런 주제의 방송을 어떻게 하면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했어. 오늘은 카메라 감독 아저씨랑 촬영하고 왔지. 방송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쭉 글로 썼어. 아나운서와 성우가 엄마가 쓴 이야기를 읽어줬어.
이제 아이는 먼저 물어본다. "엄마, 그 방송은 친구들이 뭐라 그랬어?", "이번 방송 제목은 뭐야?". 제목이 별로라는 훈수를 두기도 하고, 어떤 캐릭터가 나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보탠다. 처음에는 아이의 자세한 학교생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내 이야기. 이제는 그저 습관이 됐고 덕분에 하이디는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엄마는 회사 친구들이 보는 방송을 만드는 PD'
최근 하이디는 나와 상봉을 하면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퇴퇴 많이 팔렸어?" 퉤퉤 침 뱉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엄연히 퇴퇴. 최근 출간된 내 책, '퇴근할까 퇴사할까'에 대한 질문이다. 처음 책을 보고서는 시크하게 '엄마 이름이네.'하고 말았던 하이디. 지난주 2박 3일 출장으로 집을 비웠을 때는 엄마 책을 읽고 있다고 하더니, 토요일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했다. "우리 엄마 민작가입니다."
이제 하이디는 말한다. "우리 엄마는 피디인가 작가인가" 보지도 않은 극한직업의 유행어를 어찌 그리 딱 맞게 패러디하는지. 엄마의 일을 존중받고 싶다는 마음과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하이디는 너무도 잘 알아준다. 언제나 엄마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딸 때문에 나는 더 행복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엄마의 행복도 잘 알아줄 하이디이기에. 엄마가 행복해야 하이디도 행복할 것이기에. 이제는 내가 말한다. "우리 딸은 찰떡인가 족집게인가"
솔직히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발끈하는 하이디를 보고 싶을 때는 "하이디는 배뚱이인가 똥순이인가", 배시시 웃는 하이디를 보고 싶을 때는 '"하이디는 귀염둥이인가 사랑쟁이인가". 엄마의 별명 리스트와는 다르게 하이디가 정한 자신의 별명은 마틸다. 마틸다 뮤지컬을 보고 난 뒤부터 책을 좋아하는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며 마틸다로 불러달라고 한다. 하지만 순순히 불러줄 수가 없다. 발끈하는 하이디가 얼마나 귀여운지, 배시시 웃는 하이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욕심쟁이 엄마는 그 표정을 도저히 놓칠 수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