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아이에게 물었다. 다섯 살에 다녀온 코타키나발루를 기억하느냐고.
“응, 내 손에 반딧불이를 올려줬잖아.”
깜깜해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반딧불이이기에 단 한 컷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는데,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미니버스를 두 시간이나 타고 가서, 거기서도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 반딧불이를 만났다. 물살에 맞춰 일렁이는 배 위에서 한꺼번에 별을 뿌린 듯 반짝이는 반딧불이 빛을 넋을 놓고 봤다. 커다란 나무가 반짝이는 빛으로 덮여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닿지 않은 곳에서만 존재를 드러내리라 여겼던 반딧불이는 가이드가 보내는 빛 신호를 따라 우리가 탄 배에도 찾아왔다. 내 눈앞을 날아다니며 나를 홀리고, 하이디의 손 위에 앉아 하이디를 홀렸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아이가 반딧불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예쁘다”
강 건너 나무 곁에서 강 위의 배 곁에서 반짝이는 노란 불빛과 그 불빛에 닫는 어린 목소리와 주변을 감싼 감탄에 황홀한 밤이었다.
열두 살이 된 아이가 다시 반딧불이를 만났다. 한 시간 승용차를 타고 가 70분 동안 숲을 걸었다. 7월의 첫 토요일, 제주 청수곶자왈 반딧불이축제에서였다. 손톱달이 하늘에 박힌 밤 8시 45분, 우리 가족은 스마트폰을 끄고 인공불빛을 차단한 채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곶자왈로 들어갔다.
점점 깊은 숲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반딧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타키나발루의 반딧불이는 잔뜩 뿌려진 빛으로 거대한 황홀감을 선사했다면 제주의 반딧불이는 숲 안쪽에서 반짝반짝 빛을 비추며 마음을 간질였다. 게다가 눈앞으로 날아가고, 머리 위로 날아가며 나를 쫓는 반딧불이가 많았는데 때론 어두운 길의 등불 같았고, 때론 나를 숲으로 불러들이려는 유혹 같기도 했다.
빛을 곧장 바라보면 대부분 강렬함에 눈을 찌푸리게 된다. 하지만 반딧불이 빛은 봐도 봐도 부드럽기만 하고, 은은하기만 했다. 혹시 불빛은 한결같은데 내가 너무 놀라 깜빡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눈꺼풀에 바짝 힘도 줬다. 빛이 깜빡이는 찰나조차 딱 끊어지는 스타카토가 아니라 잠깐 숨을 고르는 쉼표였기에 곳곳에서 퐁퐁거리는 반딧불이는 비현실적이었다.
바로 앞에 걸어가는 사람마저 어렴풋이 보이는 숲터널을 빠져나오면 반딧불이 불빛은 줄어들지만 하늘의 별빛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이 아니라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듯 별마저도 가까웠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 사이로 북두칠성을 단번에 찾아 선명하게 인지하는 순간, 우물 안 개구리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동화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습한 열기와 나무가 뿜는 서늘함이 묘하게 뒤섞이고, 땅에는 노란 반딧불이 빛이 하늘에는 하얀 별빛이 반짝이고, 향긋한 숲 향이 코를 개구리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귀를 파고드는 밤. 반딧불이가 점령한 숲속을 살며시 다녀온 불청객이 됐다. 불청객에게도 존재를 드러내준 반딧불이가 고마웠고, 이번에도 “예쁘다”고 말하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반딧불이와 함께한 이번 밤도 어김없이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