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게 제일 고마운 사람

그의 보람이 되고 싶습니다

by 여유수집가

금요일 오후 반차를 쓰고 제주에 온 남편이 월요일 아침 서울로 돌아갔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사로 바로 가야 한다지. 이번 주도 회의와 회식이 많다며 일정 브리핑을 하는 목소리가 무거웠다.


제주살이와 주말부부 3년 차, 제주살이의 고비도 주말부부의 고비도 3년 차에 온다고 했다. 제주의 사계절을 두 번 정도 겪고 나면 잔잔한 삶이 지루해지고, 제주를 누리는 즐거움보다 평일 서로의 빈자리가 더 불편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지루함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제주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많고, 한 일을 또 한다고 해도 그날의 날씨, 함께 하는 사람이 다르다면 해본 일도 새로운 일이 됐다. 하루하루가 여전히 즐겁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에게는 3년 차 징크스가 제대로 찾아왔다. 3년 차 징크스라기보다는 인사발령 후폭풍이 맞겠지. 지금껏 남편은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를 회사에서 챙겼다. 삼시세끼 모두 영양 골고루 챙겨주는 사내 식당이 있었던 것. 저녁을 해결하려고 일부러 술자리를 잡지 않아도 됐고, 요린이 아내에게 얻어먹는 집밥보다 더 골고루 챙겨 먹었다.


6월에 인사발령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면서 사무실 위치도 옮겨졌는데 이제는 회사에서 점심만 챙겨준다. 건물 리모델링이 끝나야 삼시세끼 먹을 수 있는 사내 식당이 들어온다는데 공사 진척이 더뎠다. 아침, 저녁을 챙기는 것이 본인 몫이 되면서 남편은 삶의 만족도가 확연히 떨어졌다. 요리라도 즐기면 좀 나을 텐데 하필이면 요리도 부창부수라고 남편도 요리를 싫어하는 요린이였다.


게다가 옮긴 부서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서라 업무 프로세스를 수립하는 것부터 해야 할 일이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다. 부서 역사를 논하기 전에 새로운 부서와 동료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됐을 테고. 제법 평온하던 일상에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그는 ‘지친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내게는 딸과 재밌게 살라고 했다. 그래야 자신이 보람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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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보람이 되고자 한다. 힘들다는 그에게 나는 오늘 올레길을 걸었노라 말하기를 주저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오늘도 공항에 그를 내려주며 나는 이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갈 거라고 했다. 분주했던 주말을 차분히 정리하며 고요한 시간을 누리겠노라고.


바람이 거세고 날이 흐려 바다색이 무겁다. 주말 내내 구름 가득한 하늘이 그를 안타깝게 했는데 그가 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맑아지지 않아 다행이다. 비행기에서 그가 내려보는 바다도 무거웠겠지. 거센 파도가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에 무거움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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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는 이미 사라졌고, 커피잔도 비어 가고 이 글도 끝나간다. 카페를 벗어나면 나는 가벼운 내가 되어 제주를 누릴 거다. 그의 보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밤이 되면 종알종알 그에게 이야기해야겠다. 그를 보낸 뒤 나의 오전이, 딸과 함께 보낸 나의 오후가 어땠는지. 나의 제주에는 늘 그를 향한 고마움이 함께 했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