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1살, 20살의 남동생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 달 동안 영국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보고 싶은 것은 많고 일정은 짧았기에 늘 분주했다. 구글맵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 종이 지도에 가야 할 목적지를 표시해 두고 최단 동선을 찾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비슷한 골목길에서는 차이점을 발견하려 하기보다 비슷함에 방점을 찍고 서둘러 지나가기에 바빴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걸음이란 없었다. 바삐 걷는 걸음만 존재하는 여행이었다.
여행 중반에 접어들 무렵 우리는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은 그 어떤 골목길보다 더 복잡했다. 길만 얽혀있는 것이 아니라 소운하도 함께 얽혀있어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마치 미로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헤맸다.
“누나, 여기로 가는 게 맞아?”
“맞는 것 같아.”
“맞는 것 같아야? 맞아야? 같은 자리를 계속 돌잖아.”
“야, 누군 돌고 싶어 도냐!”
8월의 베네치아. 덥고 습한 날씨는 짜증 지수를 높였고, 지도를 보면서도 헤매는 상황은 이미 높아진 짜증 지수를 최고조로 만들었다. 치솟은 짜증만큼 동생과 내 목소리도 최고조로 높아졌다. 결국 나는 동생을 남겨두고 저벅저벅 앞서 걸었다. 옆에 바다가 보이건 말건 뒤에 광장이 보이건 말건 불도저처럼 걸었다. 하지만 불도저는 얼마 가지 못했다. 길을 메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걸음이 느려지자 소리가 들렸다. 진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끈적한 소리, 원래 자신들이 이곳 주인임을 알리고 싶은 비둘기 소리, 광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여행자들의 말소리. 느려지는 걸음만큼 소리는 화음을 쌓았고, 풀리는 마음만큼 소리는 단조에서 장조가 됐다. 소리가 들리니 표정이 보였고 표정을 보느라 걸음은 더 느려졌다.
탁! 누군가 어깨를 쳤다. 풍경에 빠진 시선을 돌리니 동생이었다. “누나, 그냥 저기서 사서 마시자.” 우리의 목적지였던 펍 찾기를 포기하고 걸으며 맥주를 마셨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었다. 바다가, 바다 위의 배가, 그 뒤로 지는 해가 보였다. 지는 해로 물든 광장에서 이미 지나간 중세를 보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서 오늘을 보았다. 마음 닿는 대로 걸으니 시간도 그 공간 위에 마음을 드러냈다.
이때부터였다. 내 여행에서는 자주 지도가 사라졌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지도가 사라지는 시간을 염두에 뒀다. 여행 책자에서 둘러보는 데 3시간이 걸릴 것이라 안내하면 4~5시간으로 일정을 계획하고, 내 이름 이니셜을 따 ‘SJ Time’이라 이름 붙인 시간도 일정표에 넣었다. ‘SJ Time’은 그냥 무작정 걷는 시간이었다. ‘꼭’ 봐야 하는 관광지보다도 ‘SJ Time’을 더 우선했다. 이런 비효율 여행을 좋아하는 동행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기에 혼자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은 혼자 다니는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두 발과 시선이 누리는 자유가 더 좋았다. 마음이 닿는 대로 걸었고, 마음을 부르는 곳에서는 속도를 늦췄다. 봐야만 하는 것을 향하는 것이 아닌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됐다. 내 마음만 챙기면 되는 가벼움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도와 거리를 두는 무작정 걷기 여행은 더 안전하기도 했다. 지도에 정신 팔리지 않고, 주변을 살필 여유가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일상을 벗어난 자유, 목적지가 사라진 자유, ‘꼭 가야 하는, 꼭 봐야 하는’이라는 말이 사라진 자유 속에서 내 마음은 가벼워졌고, 다시 돌아갈 일상을 더 즐겁게 살아낼 힘을 채우게 됐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무작정 걷기에 매료됐다. 더 자주 지도는 내게서 사라졌고, 목적지와 목표도 자주 놓게 됐다.
제목 사진은 Unsplash의 Alessandro De Mar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