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4년 차, 교육업무에 관심이 생긴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기업교육 전공이었다. 낮에는 회사원이면서 밤에는 학생이 되는 샐러던트 생활의 시작. 대학생 때는 자유로웠지만 가난했는데, 이제는 자유에 돈이 더해졌으니 설렘만 남았다. 시작에 따라오는 두려움은 지운 채.
퇴근 후 시작되는 학교생활. 저녁도 챙겨 먹지 못하고 헐레벌떡 수업에 들어갔다. 두 과목 연강을 듣고 나면 밤 열 시.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자양강장제를 요구했다. 발길은 당연하듯 술집으로 향했다. 테이블에 소주가 올라오고, 콸콸 잔을 채우고, 알싸하게 목으로 넘어가면 지친 나는 사라졌다. 새벽이 올 때까지 깨어있을 힘이 솟았다.
회사원이자 학생이기에 두 삶의 밸런스가 중요했지만, 대학가 술집에서는 학생만 남았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술을 마셨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10대가 된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적당히 가리고 적당히 드러내는 회사원을 지우고, 민낯 그대로를 드러냈다. 술집을 나설 때야 내가 회사원이었음이 떠올랐지만, 그때도 얼굴에 웃음은 남아 있었다. 술값도, 할증 붙은 택시비도 두렵지 않았으니까.
입학 동기는 모두 열세 명이었다. 그중 일곱은 미혼, 미혼 중 남자는 셋이었다. 기혼 동기들은 미혼 동기들을 어쩌지 못해 안달이었다. 남의 연애사는 그들에게 최고의 관심거리가 됐다. 술집 테이블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주제가 미혼들끼리의 화살표 긋기였다. 특히 나와 동갑내기 여자 동기, 우리 보다 네 살 많은 두 남자 동기가 주요 타깃이었다.
사진: Unsplash의The Creativv처음에는 화살표 긋기가 반갑지 않았다. 캠퍼스 커플의 후폭풍을 이미 알고 있기에 지금의 돈독한 동기 사이를 유지하는데 방해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화살표 긋기가 이뤄진 곳은 술집. 찰랑이는 술잔, 발개지는 볼, 느려지는 생각, 일렁이는 마음. 이성을 마비시키는 위험 요소가 넘쳤다. 한 번이 아니라 술자리마다 반복되는 줄 긋기에 ‘어색해지게 왜 그러세요 ’라던 내 반응은 ‘알았어요. 알았어’로 달라졌다.
말은 곧 마음이 됐다. 그를 칭찬하는 동기들의 말이 귀를 타고 들어와 나가지 않고 마음에 고였다. 빈 소주잔이야 눈에 쉽게 보이니 그러려니 싶었지만, 빈 스테인리스 물 잔마저 놓치지 않고 채워주는 그의 손길에 눈이 머물렀다. 옆에 앉으라고 부추겨야 앉던 그와 나는 당연하듯 나란히 앉게 됐다. 술집에서만이 아니라 수업에서도.
술집에서 이어진 선이 수업까지 따라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느슨하게 이어진 선을 바짝 당겨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순간 나는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왔다.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조건을 하나하나 따봐야 할 것 같았다. 간질간질한 마음이 실재인지 착각인지도 헷갈렸다. 술이 끌어올린 마음인지 아닌지, 학생으로 돌아간 설렘이 과도하게 부풀린 마음인지 아닌지 나침반의 여린 바늘 끝처럼 마음은 파르르 흔들렸다.
수업이 없는 휴일, 과제를 위해 학교에 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학교에 나온 동기는 그와 나 딱 둘 뿐.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직은 뜨거운 초가을 햇살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술집의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 강의실의 백열등 불빛 아래서 뿐만 아니라, 자연광 아래의 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렇게 앞서가면 안 될 것 같아 ‘괜찮다’로 수위를 낮췄다.
“누나도 아직 결혼을 안 했고,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어. 한다고 해도 3~4년 뒤쯤?”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 여기에 이르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 말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이 말을 듣고 겉으로는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으니까.
불쑥 그와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저 결심을 무너뜨리고 말겠다는 오기도 솟았다. 조건을 따져보고, 속도를 조절하던 회사원은 사라졌다. 마음을 믿고 질주를 시작했다.
그동안 쌓은 연애 공력이 총동원됐다. 그가 ‘사귀자’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신호를 보냈다. 산뜻하게 먼저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무모해서는 성공률을 높일 수 없었다. 조건을 재지는 않더라도 상황은 재야 했다. 4학기 대학원 등록금을 합하면 2,400만 원인데 연애 한번 잘못해서 이 돈을 날릴 수는 없었다.
촉촉한 가을밤, 그와 나란히 집 앞 벤치에 앉았다. 단둘이 이자카야에서 소주를 마시고 달큰하게 취한 뒤였다.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으며 단둘이 있는 시간을 자주 마련했지만, 둔한 건지 고민이 많은 건지 그는 여전히 내 신호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둘이서 술까지 마신 오늘도 실패라며 등을 보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덥석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두툼한 그의 손에서 끈적한 땀이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멋있는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
10년도 더 지난 연애시절의 우리다시 학생이 되지 않았더라면 쉽지 않았을 연애였다.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형을 찾아 이것저것 따지느라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잦은 소개팅에서 족족 실패를 거듭했다. 상처받기 싫어 먼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상대가 다가오기를 바라면서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게 신중한 어른의 모습이라 여겼다. 신중함이 아니라 두려움에 휩싸인 소심함이었지만.
그와 연애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나는 씩씩해졌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숙제를 함께 하자며 데이트를 청했다.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집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 데려다 주기를 청했다. 동기들이 더 부추겨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앞서가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을 바로 보고,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내 마음에 책임지는 내가 근사한 어른이라 여겨졌다.
어른답게 어른다운 사랑을 하게 된 나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그와 결혼을 했다. 계절은 한 바퀴를 더 돌아 차가운 겨울 햇살이 그의 미소만큼 눈부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