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술

소주와 맥주

by 여유수집가

우리 가족은 주말 가족이다. 나와 딸은 제주에, 남편은 서울에 살며 이 주에 한 번 만나 3박 4일을 함께 보낸다. 남편이 격주 금요일마다 휴가를 내고 목요일 밤에 제주에 오는 일정이다. 남편은 목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오기에 제주집에 도착하면 밤 9시가 조금 넘는다. 조금이라도 제주집에 빨리 오기 위해 허겁지겁 공항으로 가서 빠듯하게 타야 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듯 저녁 식사는 건너뛰게 된다.


격주 목요일 저녁이면 나의 주방은 분주해진다. 요리를 즐기지 않아 재료는 듬뿍 쓰더라도 조리법은 하나인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내가 볶고 끓이고 굽는다. 인덕션 세 구가 동시에 불이 켜지는 특별한 날이다. 매콤하게 입을 자극하는 볶음, 속을 풀어주는 뜨끈한 국물, 지글지글 기름을 적시는 구이. 메뉴는 모두 술을 부르는 것들이다. 고픈 배를 참고 제주로 퇴근하는 남편과 요리를 즐기지 않는 내가 2주 만에 만나 술을 마시는 밤이다.


2주 만인데 목요일만 마실쏘냐.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밤이면 더러는 집을 벗어나서도 마신다. 밖에서 마실 때는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으니 어린이를 동반해도 괜찮은 곳이어야 하고 혼자만 마시면 재미가 없으니 대리기사를 부르기 쉽거나 택시, 버스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대리기사는 서울보다 비싸고, 택시도 잘 안 잡히는 경우가 많아 우리 부부는 버스를 이용한다.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즐겁게 술을 마신 뒤 배차 간격이 50분인 버스의 도착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이때 흥에 겨워 버스를 놓치면 곤란하니 술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을 알람으로 맞춰두는 것은 필수. 차는 다음 날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서 가지고 온다.


모두 다른 캠핑이지만 술은 매번 소주와 맥주

뭐가 좋다고 술타령이냐 싶겠지만 애주가끼리 만났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게다가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가장 좋은 술친구다. 남편은 소주, 나는 맥주로 선호하는 주종이 다르고 술을 마시는 속도도 달라 각자의 잔은 직접 채워 마시지만, 경계 없이 넘나드는 이야기의 흐름과 말하고 들어주는 이야기의 박자는 같다.


남편과 나는 처음부터 커피보다는 술을 마셨다. 대학원 동기에서 연인 사이가 되기로 한 곳도 술집이었고, 기념일이나 생일같이 특별한 날에도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작고 예쁜 술집을 찾아다녔다. 남편이 내게 프러포즈를 한 곳도 바였다. 신혼 시절 집 앞에 단골 술집을 두었고, 부모가 되며 밤 외출이 어렵게 되자 집을 술집 삼았다.


커피처럼 딱 한 잔만 제 몫이 되지 않고 몇 잔이든 마를새 없이 입을 적셔주는 술이 좋았다. 논리적인 말보다 감성적인 말을 부르는 술이 좋았고, 밖에서 쌓인 긴장을 나른하게 풀어주는 술이 좋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헤실헤실 웃게 만드는 술이 좋았고, 어른다움은 내려놓고 생떼를 쓰게 되는 술이 좋았다. 발그레한 볼과 촉촉한 입술을 만들어주는 술이 좋았고, 안에 고인 열기를 밖으로 끄집어내 일렁이게 만드는 술이 좋았다.


서울과 제주에서 주말 부부로 살며 마음의 거리가 여전히 가까운 것은 둘 사이에 변함없이 흐르는 술 때문이리라. 숫자로 계산되는 물리적 거리를 계산할 수 없게 만드는 술, 한 톨의 서운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털어놓게 만드는 술, 서운함이 사라진 자리를 말랑하게 채우는 술 덕분이리라.


남편이 떠난 제주에서 다시 남편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무슨 안주를 요리해 볼까 궁리하는 내게 아이가 말한다. 아빠랑 술 좀 그만 먹으면 안 되냐고. 둘만의 대화에 빠져 자신이 낄 자리가 없는 것도 싫고, 대화가 격해질 때 요란해지는 것도 싫고, 또렷함이 사라지는 말투도 싫고, 사랑을 내세워 자신에게 치대는 것도 싫은데 왜 자꾸 둘은 술을 마시냐고 타박이다.


아이의 말이 모두 맞지만 그래도 남편과의 술은 포기가 어렵다. 평소에 잘 허락하지 않는 영상물 시청권을 내걸고 술을 마실 테다. 2주 동안 떨어져 있으며 식었던 몸의 열기를 데우고, 멀리 있어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내고, 망설이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에는 술만 한 것이 없으니까. 그래야 주말부부의 삶에서 돈독함이 옅어지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