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작가 이름만으로 사기도 하고, 지금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어 사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어 호기심에 사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저 끌려서 사기도 한다. 내 책을 사는 독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 책을 살까. 아직 초보 작가라 ‘유명인이 추천하는 책’이라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인,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님께서 내 책의 추천사를 써주셨다. 다음 책을 집필하고 계셔서 부탁부터 조심스러웠는데, 원고 몇 꼭지만 읽고 써주신 것도 아니고 교정 중인 원고 전체를 읽고 추천사를 써주셨다.
추천사를 받고, 책이 인쇄되는 과정에서 김호연 작가님을 뵐 수 있었다.
“사실 안 써주실 줄 알고 거의 기대 없이 여쭤봤었거든요. 그런데 추천사를 써준다고 하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김호연 작가님께서는 꽤 오래전,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꺼내셨다. 작가님의 첫 책인 『망원동 브라더스』 가 출간됐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써준 서평을 기억하고 있다고. 고마웠노라며. 기억 남는 서평을 남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가님께서 내게 추천사를 써주신 것은 아닐 테지만, 아직 기억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해 오랜만에 『망원동 브라더스』의 서평을 꺼내 본다.
2013년 7월 18일에 쓰다
김호연 지음, 망원동 브라더스
친한 선배가 망원동에 살고 있었다. 그 선배와 마음이 맞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결성한 모임이 '시사부모'였다. 시한부 사회 부적응자들의 모임. 겉으로 보기에는 주류의 인생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듯 보이나 비주류의 정서를 가지고 혹은 동경하며 언젠가는 비주류가 되리라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선배의 초대로 망원동 어느 삼겹살 집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셨다. 물론 시사부모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때 망원동은 선배와 또 우리 모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동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바랄 망에 멀 원의 망원동이 내게는 잊을 망에 멀 원으로 다가와 멀리 잊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모임이 결성되었을 때만 해도 멤버 모두(?)는 곧 사회 부적응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기면서 사는 삶보다는 지면서 사는 삶의 행복을 택하리라 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지금, 지나온 시간만큼 그 시절의 바람도 흐릿해졌다. 물론 그 시절의 생각과 마음 그대로를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흐릿해진 바람을 '망원동 브라더스'는 선명하게 바꿔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시대에 작가는 망원동 브라더스를 통해 지면서 사는 삶의 행복함을 이야기한다. 20대 만년 고시생, 30대 백수와 별 다름없는 만화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황혼 이혼남의 주인공들은 이미 인생의 게임에서 질만큼 진 루저 중의 루저가 아닌가.
충분히 우울하고 음침해야 할 4명의 주인공에게서 우울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유쾌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함께가 아닌 각자일 때 이들은 우울하고, 루저가 된다. 4명이 함께이면 무슨 무적의 로봇이 합체한 것 마냥 루저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 상대가 아닌 상대는 그저 나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나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인생의 루저는 '우리'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고 '나'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내 곁의 사람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로 끌어안는 것이 행복임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내 곁의 사람이 나라면 상대에게 지는 것도 아무렇지 않을 테니까. 이 소설의 마지막이 진정한 해피엔딩인 이유도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우리에서 또 다른 우리로 관계를 확장시키며 새로운 내일을 맞이했음에 있다.
경조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혹은 지인들에게 드러내고자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대박을 바라며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지고 있는 태양도 내일이 되면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면 된다. 다만 내일이 되면 다시 떠오를 태양을 위해 오늘을 제대로 마감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언젠가는 사회 부적응자로 살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기는 삶에 길들여진 지금의 챕터를 언제 마감해야 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물론 고민의 답을 당장 내릴 수는 없겠지만 내일의 태양을 만나기 위해 멋진 마감을 하고 싶다. 망원동 브라더스와 망원동에서 술 한 잔 하고, 아구아구 해장국을 먹고 또다시 해장술을 마시면 더 빨리 고민의 답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더 이상 망원동에 살지 않는 선배를 포함한 시사부모 멤버들과 조만간 술 한 잔 해야겠다.
글을 썼던 시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이 서평을 꺼내 읽으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이기는 삶에 길들여진 당시의 챕터를 잘 마감했기에. 이제 더는 이기기 위해 무리하는 삶은 없다. 여유를 통해 행복의 조각을 모으며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