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보이는 테라스 난간 위로 내 손바닥 길이만 한 눈이 쌓였다. 난간 너머 나무는 상록수임을 지우듯 묵직하게 눈을 얹고 하얀 자태만 남겼다. 이미 온 세상이 하얀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눈은 쉼 없이 내린다. ‘펄펄’을 몇 번 겹친 채 눈은 쏟아붓듯 내리고 있다.
지금 이 시각. 남편은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 활주로가 풀리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에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기다리다 다시 내려 공항에서 대기 중이란다. 예정대로라면 어젯밤 제주에 도착했어야 하건만 결항으로 오지 못했다. 오늘은 무사히 올 수 있으려나.
딸은 어제는 걸어서 학교에 갔는데, 오늘은 결석을 택했다. 쌓인 눈의 높이가 어제는 아이 부츠를 넘지 않았지만 오늘은 넘을 거라고 예상이 되어서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꼭 학교에 가겠다던 아이도 바깥 상황을 살피더니 고집을 꺾었다. 다행히 오늘 결석한 친구가 많아 크리스마스 파티를 미룬다고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협재에 사는 친한 부부와 오늘 저녁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했건만 같은 제주에서도 오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을 먹을지 신나게 의논했던 며칠 전이 까마득하다. 지금은 함께 무엇을 먹을지가 아닌 각자의 냉장고에 폭설로 인한 고립을 버틸 음식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서울에 살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불편함이다. 남편은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고, 제설이 빨리 이뤄지기에 아이들도 제시간에 등교했을 테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이동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테고. 자연이 가까운 제주에 사니 자연의 위력을 더 크게 느낀다.
자연을 누리는 대신 불편함이 따라온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7시 50분에 이륙했어야 하는 비행기가 10시 30분에 이륙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으며 생각이 달라진다. 4년 동안 제주에 살며 몇 번의 폭설과 몇 번의 고립을 겪었지만 자연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냉장고를 미리 잘 채워두자는 다짐과 함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남편의 결항을 겪으며 처음으로 자연을 향한 원망이 치솟는다. 아, 아무래도 다시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됐나 보다.
따스한 집 안에서는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아이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남편이 있는 공항은 안내방송이 끊이지 않을 텐데. 올해 크리스마스에 우리 가족이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는 미정이다. 하지만 주말부부 생활이 끝나는 내년에는 아무리 폭설이 와도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