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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재능기부

씨앗이 토마토가 되었어요

by 여유수집가

재능 기부. 주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할 때 접하게 되는 말이다. '임직원 재능 기부로 집 고쳐주기', '재능기부 봉사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공동육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도 재능 기부이다. 크게 공동육아 '함께 놀이'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엄마표 재능 기부 놀이, 체험 놀이, 아빠랑 함께 하는 놀이다. 체험 놀이는 뮤지컬, 박물관 등의 관람과 같은 외부 기관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말하고, 아빠랑 함께 하는 놀이는 말 그대로 아빠들이 참여하는 모임을 지칭,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가장 많이 시행되는 엄마표 재능 기부 놀이다.


모두들 워킹맘. 그러나 유아 교육 또는 놀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다. 가장 관련 있는 직업이 중학교 수학선생님. 그리고 대부분은 그냥 회사원이다. (물론 근사한 배우님도 계신다) 처음 엄마표 재능 기부 위주로 '함께 놀이'를 운영하자고 했을 때 부담이 많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림을 썩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가르치는데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품어야 하는 것 역시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합쳐지며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인터넷 시대. 정보가 차고 넘친다. 엄마표라는 말로 검색을 하면 쏟아지는 정보들. 그리고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역시 다양하다. 게다가 DIY 만들기 세트 역시 종류도 많고 구입도 쉽다. 그리고 집단지성 아니던가. 다음 주에는 모여서 무엇을 할까요?라는 질문이 카톡 단체 창에 뜨고 나면 잠시만 흐름을 놓쳐도 읽지 않은 톡 숫자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7명의 엄마들이 평소에 생각했던 것, 아이의 유치원/어린이집 수업 내용에서 얻은 아이디어, 웹 서핑하다 캡처해둔 것 등등 무한 아이디어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종이컵으로 시작된 고민은 종이컵과 떠나는 우주여행이 되고, 여름이니 바다 관련 주제면 좋겠다고 시작된 이야기는 바다에 사는 동물을 배워요로 확장된다. 이런 경험이 거듭되니 이제는 더 이상 '함께 놀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재능이 꼭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고민에 의해서 그리고 그 고민을 실현시키는 열정에 의해 얼마든지 빛날 수 있음을.


이번 '함께 놀이' 역시 식목일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식목일을 앞두고 연관된 놀이 아이템을 해보자는 것이 이야기의 처음. 그리고 이 이야기는 '씨앗이 토마토가 되었어요'의 '함께 놀이'로 확대됐다. 사실 엄마들의 이야기 나눔은 식목을 앞두고 씨앗 관련된 무엇인가를 한 번 해보자는 것이 끝이었다.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살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까지는 나왔던 듯하다. 그리고 그 주 선생님 엄마가 더 고민해보겠다는 것이 마지막 멘트였다. 며칠 뒤 고민의 결과는 수업 공지로 네이버 까페에 등재가 되었다.


수업 공지는 동일한 양식을 시스템에 반영해 두고 수업 전에 미리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참석 인원도 파악하고, 준비물도 확인하고, 수업에 대해 사전에 아이들에게 귀띔해주거나 조금 더 여유가 될 때는 관련 책을 미리 읽고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을 위해서이다. 처음 공지된 진행과정을 읽고 내가 상상했던 '함께 놀이'는 노래를 부르고, 책을 보고, 미술 활동을 하겠구나였다.


그리고 '함께 놀이' 당일.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 같이 율동을 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른 것 까지는 예상과 같았다. 그러나 플랩 북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함께 놀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존에 만들어진 책이 아닌 선생님이 직접 만든 책이 아이들 앞에 펼쳐졌다. 음식을 통해 씨앗의 종류를 알아보고, 그 씨앗이 새싹이 되고 꽃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오브제를 붙여가며 살펴보는 너무 특별한 책이었다.


별과 나비가 되어보는 것은 수분에 대해 배우고 종이꽃을 활용해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끝에 털이 달린 막대기로 수꽃에 뿌려진 가루를 문질러 암꽃에 옮겨보았다. 그리고 나면 꽃에서 과자 열매가 열렸다. 막대기를 이리저리 문지르는 것부터 깔깔 웃음보가 터진 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서 여자아이들로, 아이의 작은 손에서 엄마의 큰 손으로 서로서로가 꽃이 되어 서로를 문지르는 놀이로 범주를 확장시켰다. 마지막은 구하기 어려웠던 토마토 모종 대신 딸기 모종이 심어진 화분을 나눠갖고 화분 꾸미기를 진행했다. 아이는 화분에 씩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아침 이름을 불러주겠다고 선생님과 약속을 하더라.


1122.jpg 엄마표 플랩북, 제대로 남겨진 사진이 없어 아쉬움

물론 오늘의 선생님이 직접 만든 책을 보면 타고난 재능이라고 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정말 솜씨가 좋다고 엄마들이 거듭 감탄을 하니 돌아오는 답, 오랜만에 이렇게 마음껏 만들어 볼 수 있어 재미있고 좋았단다.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하고, 관심과 애정에 의해 그리고 서로의 도움에 의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하는 공동육아. 거듭되는 공동육아 모임 속에서 바람이 생긴다. 타고 나는 재능도 시도하고 노력해야 펼칠 수 있음을. 또 관심과 노력에 의해 재능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음을 지금의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시나브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함께 놀이는 이렇게 >

0) 준비물: 매직이나 진한 볼펜

1) 함께 노래하기, '씨앗'

2) 씨앗의 종류와 씨가 꽃이 되는 과정을 엄마표 플랩북으로 살펴보기

3) 수분 과정을 배우며 벌과 나비가 되어보기

4) 딸기 화분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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