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로 남긴 이름들

영화 '내 이름은'을 보고

by 여유수집가

염혜란 배우와는 2016년부터 알고 지냈다. 그해 드라마 ‘도깨비’에서 그녀는 여주 김고은에게 밥그릇을 던졌다.


“선유야, 저 사람이 혜란 이모야.”

“아니야,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당시 여섯 살이던 딸은 연기를 이해하기는 어렸기에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 공동육아모임을 함께 했던 사이. 그녀는 나와 딸에게 배우이기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작년 봄, 그녀가 제주도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됐다고 알려왔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내가 제주에 사는 동안 우리집에서 몇 번 자고 갔던 그녀는 내가 제주에 없으니 제주가 멀어진 느낌이라고도 했다. 그때 찍은 영화, ‘내 이름은’이 오늘 개봉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 VIP 시사회에 다녀왔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제주에 살다 서울에 와서 크게 놀란 것 중 하나는 제주 4.3이 뉴스에서만 너무 짧게 기억된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어야 하는 제주 4.3을 다룬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의미를 넘어 충분히 좋은 영화였다.


영화는 제주 4.3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국가 폭력과 함께 학교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폭력도 보여준다. 특히 고민수라는 인물 앞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그는 후회했을까?


이 영화는 폭력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기억에 대해서도 말한다. 아픈 기억을 잊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제대로 기억하고 애도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음도 알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폭력이 묻어버린 이름들이 엔딩크레딧에서 9,778명의 시민 후원자 이름들과 겹치며 영화는 희망으로 끝났다.


폭력과 기억 사이를 오가며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울었다. 좋은 사람의 연기는 역시 좋을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노래까지 잘하는 염혜란 배우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로 좋은 영화를 찍었다. '내 이름은'이 많은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시사회는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딸과는 극장에 한 번 더 가려 한다. 이제는 연기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예전처럼 화면 속 혜란 이모를 보고 무조건 울지는 않겠지. 그래도 담배 피우는 장면을 보면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제주에 살며 학교에서, 성당에서, 지역에서 제주 4.3을 깊게 배운 아이이기에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말을 할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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