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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아이에게

by 여유수집가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그 지역 이름을 딴 여고를 졸업했다. 그러니까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니 첫 중간고사는 유독 긴장됐다. 역시나 수학 시험 점수를 보고 좌절했다. 82점이었다. 수학에 자부심이 있던 내게 믿기 힘든 점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하지만 82점은 내 수학부심을 더 키웠다. 수학 시험에서 80점을 넘긴 사람은 전교에서 내가 유일했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 자율학습 시간, 담임 선생님은 내 책상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선정아, 영어 공부 좀 해. 부족한 걸 더 공부해야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었다면, 제일 싫어하는 건 영어였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시간이 순삭 됐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는 건 괴로웠다. 선생님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학 문제집에 몰두했다. 풀이 과정을 따라가면 정확히 딱 떨어지는 답. 그 논리의 세계는 정말 근사했다.


법학과와 수학과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법대를 선택하고 문과를 진로로 정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건 수Ⅱ를 더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보통 내게 언어 과목을 바랐는데, 꼭 수학까지 함께 가르쳤다. 나는 정말 수학에 진심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라는데 우리 딸은 나와 너무 달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사내 상담실 이벤트로 부모-자녀 기질 및 성격 검사를 받았다. 부모의 관찰을 토대로 한 검사라 아이 결과는 추정일 뿐이라는 안내가 있었지만, 결과는 뚜렷했다. 나는 자극 추구,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위험회피는 낮은 기질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항목에서 나와 반대였다. 끝과 끝에 서 있는 모녀.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기질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완전히 다를 거라는 걸.


수학부심 충만한 내가 낳은 아이인데, 딸은 수학을 싫어했다. 영어는 너무 좋아하고. 시키지 않아도 영어 원서를 읽는데, 수학은 시켜도 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생각해야 해."

"왜 차근차근 생각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써가면서 풀어."

"머리로 생각하는 게 더 빠른데 굳이 왜 써야 해?"


"수학은 논리력을 키우는 과정이야."

"논리보단 창의성이야."


"논리가 있어야 번뜩이는 생각도 더 잘 나는 거야."

"상상력이 풍부한 게 더 중요해."


아이는 따박따박 내 말을 막았다. 수학이 정말 싫었는지 말대꾸 능력을 급성장시켰다. 그때마다 답답했다. 이해가 안 됐다. 이렇게 명확하고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를 왜 거부하는 걸까. 한 번만 관심을 기울이면 술술 풀릴 텐데.


혹시 내가 설명을 어렵게 하나 싶어 유튜브 강의를 참고해 알려줘도 아이는 시큰둥했다. 열심히 설명하는데 딴생각에 빠진 아이와 답답한 내가 부딪히는 시간이 반복됐다. 강도도 점점 세졌다. 결국 외주를 줬다. 과외 선생님을 모셨다.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잘 들을까 싶었지만 과외를 해도 수학 실력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선행도 아닌 현행인데 말이다. 선생님은 문제를 많이 풀지 않아서라고 분석했으나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아이이다 보니 매일 악기 연습이 우선이었다. 악기 연습하는 뚝심으로 수학 문제도 파고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수학 공부 시간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단의 조치로 매일 거르지 않고 문제를 풀게 해 봐도 하기 싫은 공부는 시간만 훅훅 잡아먹었다. 몇 문제 풀지 않고도 시간은 훌쩍 지나갔으니 문제 풀이량을 늘리는 건 정말 어려웠다.


"수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아이. 나는 수학만 하고 싶었는데. 답답함이 차오르다 넘치면 남편을 째려봤다. 분명 부모 중 한쪽을 닮았을 테니, 딸은 아마 남편을 닮았겠거니 하고.


아이의 중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났다. 영어는 여전히 걱정할 게 없고, 문제는 역시 수학이었다. 중간고사까지만 해도 속상함과 걱정이 뒤섞여 마음이 요동쳤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다. 어찌 사람이 모든 걸 다 잘하랴. 나에게 수학이라는 재능이 있었다면, 아이에게는 음악이라는 재능이 있는 거지. 각자의 영역에서 빛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기말고사 3일 전, 아이는 자신이 속한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무대에 섰다. 연주하는 딸을 보며 뭉클했다. 내가 수학 문제를 풀며 느꼈던 희열을 아이는 음악을 통해 느끼고 있었다. 닮지 않아도 괜찮은 모녀. 오히려 다르기에 더 특별한 모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래도, 아주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수학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예고 입학시험에 수학 성적도 포함이 되니까. 그렇기에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되, 강요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으니. 수학은 통과점일 뿐, 아이의 진짜 무대는 음악이라는 넓은 세계임을 내가 더 믿고 지지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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