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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왜 꼭 엄마 앞에서 터지나요?

by 여유수집가

사실 딸은 "엄마"보다 "아빠"를 부르며 울었다. 세 살, 남편 직장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딸의 등하원은 남편 담당이었다. 여섯 살, 유치원으로 옮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곱 시에 출근해 야근이 일상인 나와, 여덟 시에 나가 정시에 퇴근하는 남편의 근무 시간 차이 때문이었다.


아침을 차리고, 저녁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돌리고 정리하는 건 내 몫이었다. 하지만 딸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놀아주고 재워주는 건 남편이었다. "아빠"하고 우는 딸을 보며 남편을 질투하지는 않았다. 애착 형성이 잘된 거라고,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서운함을 감췄다.


딸과 단둘이 제주에 살게 됐다. 남편은 서울에 남았고 우리 가족은 주말부부가 되었다. 딸은 열 살이었다. 아빠랑 유대감이 워낙 끈끈해서 걱정은 떨어진 부녀 사이가 아니라 둘만 살게 된 모녀 사이였다. '우리는 탯줄로 이어져 있었잖아'라는 정서적 믿음을 붙잡고 제주 생활이 시작됐다.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이고, 하루 중 2/3 이상을 함께 붙어 지냈다. 학교에 가 있거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딸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렇게 4년을 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는 가족이 합체됐으니 딸의 유대감도 엄마와 아빠 사이에 공평하게 나뉘겠거니 생각했다. 더 오랜 기간 남편이 주 양육자였기에 다시 아빠 껌딱지가 될 수 있겠다고도 예상했다. 평소 주말마다 아빠가 제주에 오면 그렇게 딱 달라붙어 있던 딸이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서로를 찐하게 의지했던 제주살이의 시간 때문인지 딸은 서울에 와서도 여전히 엄마 껌딱지였다. 학원을 갈 때도 내가 데려다줘야 하고, 아빠의 회식은 괜찮지만 내 저녁 약속은 싫어했다. 가끔 저녁에 약속이 있어 나가도, 자기가 잠들기 전에 내가 집에 오기를 바랐다.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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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2학년. 세상 순하고 착하다는 딸은 유독 나한테만 뾰족한 말을 한다. 누군가 '사춘기에는 엄마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쓴다'고 했는데, 그 말을 따라 '그래, 나는 쓰레기통이다'를 주문처럼 되뇌어보지만 그게 잘되진 않는다. 쓰레기통도 가끔은 넘치는 법이니까. '잘하지 않아도 되지만, 태도는 바르게'가 내 훈육 철학인데, 그 못된 태도 앞에서 내 인내심은 자주 깨지고 만다.


며칠 전 일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학 과외를 준비하며 학교 홈페이지에서 기출문제를 내려받으려 했다. 그런데 딸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단다. 아이디를 찾고 비번을 재설정했더니 선생님의 승인이 한 번 더 필요했다. 결국 기출문제를 받지 못했다. 온라인이 일상인 알파세대라더니 정작 중요한 건 잘도 까먹는다.


"도대체 아이디가 몇 개라고 기억을 못 해? 비번도 그렇고. 이건 중요한 정보잖아. 앞으론 꼭 기억해."

"간섭 좀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


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이 글에는 쓰지 못하지만 딸은 '내가 알아서 해'에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과격한 말을 쏘아댔다. 과외 선생님이 금세 도착하셔서 그 자리에서 혼내지를 못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딸은 내게 백허그를 했다. 미안하다는 뜻이겠지. 키도 덩치도 나보다 훌쩍 커진 딸이 아직도 마음에 남은 뾰족한 말을 덮어버릴 듯 뒤에서 끌어안으니,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과외 전, 모녀 전쟁을 지켜보다 외출한 남편이 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엄마에게 더 많이 화내는 뇌과학적 이유'였다. 아이는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하는데, 나와 엄마가 한 몸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가 난단다.


아, 그러니까 아이디와 비번을 잃어버린 자신이 한심해서 나에게 대신 화를 낸 거라는 거지? 스스로 한심함을 알았으니 됐다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신승리라도 해야 버틸 수 있는 게 사춘기 육아라더니 실감 중이다. 그렇다고 매번 화가 참아지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감정이 앞서 말이 거칠어지고 돌아서서 후회하기 일쑤다. 사춘기 육아를 하며 화를 잘 참는 어른으로 레벨 업되고 있는 것 같다. 딸보다 내 성장 속도가 더 빨라야 할 텐데.


'여유수집가' 닉네임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딸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좀 더 여유를 담아야겠다. 지금은 그렇게 다짐해 본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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