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과 스위스 일주일
늘 계획은 거창하다. 출발 일주일 전 업무를 잘 분배해 체력을 안배하고, 쉬엄쉬엄 짐도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이 언제 계획대로 되던가. 고작 일주일을 비우는 것이 뭐라고 매일매일 야근은 계속됐고, 결국 금요일에서 토요일을 넘긴 새벽까지 일을 한 뒤 곧바로 토요일에 출발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짐도 벼락치기로 쌀 수밖에 없었고.
스위스는 산악지대가 많아 비가 오면 가을 날씨가 되고, 융프라우는 한 겨울이기 때문에 여름이라고 여름옷만 챙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물가도 비싸고, 음식도 짜다는데 일곱살 동행이 있으니 음식 역시 일부는 챙겨가야 했다. 28인치 캐리어가 부족했다. 조금씩 포기하고 이래저래 틈 사이를 공략하며 겨우겨우 캐리어를 닫았다.
들어보니 헉하는 무게. 혹시나 하고 체중계에 올려보니 28.1kg. 수하물 무게 제한인 23kg을 초과한 것. 그렇다고 더 뺄 수 있는 것도 없고. 캐리어를 두 개로 나누면 아이를 챙겨야 하는데 더 불편할 것 같고. 다시 재정리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고. 그냥 추가 비용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뜻대로만 되는 일은 없는 법. 가볍게 메고 있는 배낭을 보고 거기에 짐을 일부 옮겨 담으면 어떻겠냐는 직원의 제안에 억지로 닫은 캐리어를 열었다. 그렇게 23kg을 조금 초과하는 것으로 캐리어 무게를 맞춘 뒤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10만원은 아꼈지만 짐을 다시 싸며 시간을 보내 결국 면세점에 갈 시간이 부족했다. 공항 면세점의 5만원 선불카드가 내 손에 있었고, 화장품을 사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왔었는데 말이다. 그 5만원은 게이트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면세점 코너에서 목베개와 볼펜으로 교환됐다. 물론 면세점에서 사리라 결심하며 챙겨 오지 않은 스킨은 결국 기내 면세점에서 구입했고 말이다.
드디어 출발. 11시간 30분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문제는 일곱살.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얼마나 버텨줄 것인지. 짜증을 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되고 겁이 났던 나는 만발의 준비를 갖췄다. 갤럭시탭, 아이용 헤드폰, 색칠책, 스티커책을 챙긴 것이다. 아이는 챙겨간 갤럭시탭을 보다가 비행기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결국 잠을 자며 11시간 30분을 보냈다. 큰 짜증 없이 말이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오지 않는 법. 푹 자야지 생각했던 비행에서 두 시간도 잠을 자지 못했다. 피곤한 시작이라 제일 걱정이 된 것은 나의 체력.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여행의 열정과 즐거움이 나를 버티게 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풍경이 복지라는 스위스에서 풍경은 내게 보약이 되어줄 것이다.
Tip! 챙겨가니 도움이 되었어요!
1) 방수되는 고어텍스 재킷 (봄/가을용)
비 오는 날, 가을 날씨가 되는 스위스에서 이 옷 하나 딱 걸치면 춥지도 않고, 마음껏 돌아다니는데 지장도 없고 좋았습니다. 물론 융프라우 갈 때도 속에 경량패딩 하나 입고 이 옷을 걸치면 무난했고요. 초록초록한 스위스는 원색 옷을 입어야 사진이 잘 나옵니다. 재킷 역시 원색으로 장만해보시면 어떨지. 빨간색 추천합니다.
2) 선글라스
쨍한 날에는 햇빛이 너무 강해 없어서는 절대 안 될 필수 아이템입니다. 융프라우에서는 하얀 눈 때문에도 꼭 필요했고요. 사진을 예쁘게 찍겠다고 모자를 쓰지 않았더니 정수리가 빨갛게 익을 정도의 햇빛이었답니다. 아이 것도 챙겨주세요.
3) 멀티탭
스마트폰, 고프로, 갤럭시탭 등 충전해야 할 물건들이 많지요. 어댑터에 멀티탭 하나 꽂아두면 든든합니다.
4) 트래블 쿠커
호텔에 전기 주전자가 없는 곳이 많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호텔에서는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환기를 충분히 시키는 것으로 대신하며 트래블 쿠커를 사용했네요. 햇반을 데우고, 누룽지를 먹고, 즉석국을 먹는 데 사용했답니다.
5) 먹을 것
캔 반찬(멸치 3캔, 메추리알 장조림 3캔, 깻잎 2캔)을 사 갔는데 모두 다 먹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지에서 먹기는 맛도 그 정도면 충분했네요. 캔 김치도 사갔었는데 캔 김치보다는 차라리 깻잎 매콤한 맛이 더 좋았습니다. 참치캔과 여행용 김 역시 좋았고, 즉석 미역국도 아이가 잘 먹어서 좋았습니다. (즉석 시금칫국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했네요.) 누룽지 역시 맛도 좋고, 먹기도 간편해 잘 먹었고요.
6) 나무젓가락
에어비앤비에도 젓가락은 없었습니다. 라면을 먹을 때 포크는 OH! NO~ 나무젓가락이 유용했습니다.
7) 상비약 중 리도멕스
아이가 모기에 물리면 금세 덧나는 체질이라서 리도맥스를 챙겨갔습니다. 유람선에서 한 군데 물려서 어김없이 덧났고, 리도멕스를 열심히 발라주었더니 번지지 않고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농가진이 되면 어쩌나 마음 졸였었네요. 아이 평소 체질을 고려해 약을 챙겨가시면 좋겠습니다.
8) 갤럭시탭
아이와 함께라면 필수품이 아닐까요? 영상을 듬뿍 담아가(카카오 키즈 이용했어요.) 비행기에서도 사용하고, 호텔에서 엄마와 아빠가 휴식을 취할 때 아이는 갤럭시탭을 봤었네요. 여행의 최고 조력자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