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과 스위스 일주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날씨가 아닐까. 본격적인 스위스 관광 첫날. 취리히에서 루체른으로 넘어온 우리를 반긴 것은 잔뜩 흐린 하늘과 흩뿌리는 비였다. 폭우는 아니었기에 방수 재킷을 입고 돌아다니면 될 정도. 이런 흩뿌리는 비는 비도 아닌지 우산을 쓴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냥 맡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날 플랜 B를 가동해 교통박물관을 찾았다. 비교적 정확한 MeteoSwiss 날씨 앱을 통해 서울에서부터 비가 올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실망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물론 비가 오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40여분 남짓을 기차로 이동한 직후라 버스보다는 유람선을 타고 교통박물관으로 향했다.
스위스 여행의 가장 큰 조력자는 SBB 앱이었다. 기차, 버스, 유람선 등의 시간을 정확하게 안내했다. 이날 역시 루체른 역의 코인라커에 캐리어를 보관하고, SBB 앱을 통해 유람선 출발시간을 확인하니 10분이 남아있었다. 이 배를 놓치면 다음 배는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사전에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역과 선착장은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SBB 앱은 몇 번 선착장인지까지 정확하게 안내해 헤맬 일 없이 10분 안에 배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여행객들은 대부분 스위스패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표를 별도로 구입하지 않고 타야하는 교통 수단에 제 시간 안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표 역시 타고난 다음에 검사하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타고 첫 번째 선착장에 내리자 교통박물관이 우리를 맞았다. 어제 도착했기에 시차 적응은 당연히 불가능. 새벽 3시부터 몸을 뒤척여 4시에 기상한 덕분에 자연히 서두르게 되었고, 박물관 개장 시간인 10시 전에 도착을 했다. 비 오는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까 싶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찾은 스위스 현지인들이 많더라. 비 오는 주말, 하루 종일 아이와 집에서 씨름하기 힘든 것은 세계 부모 공통 사안이 아닐까.
기차관, 자동차관, 해양 교통관, 케이블관, 항공 우주관 등으로 나눠진 실내 공간은 물론 실외 체험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통수단 킥보드까지 마련되어있는 수준이었다. 살짝 있는 감기 기운이 더 심해질까 우리는 실내 전시장만을 찾았는데 이곳 아이들은 비옷을 입고 아무렇지 않은 듯 실외 체험장을 즐기더라. 비로 인해 제약을 두는 나와 비에도 제약을 두지 않는 부모.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배짱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실내 역시 다양한 체험이 있었다. 챗바퀴를 직접 돌려보는 것, 손의 힘으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보는 것, 조정 경기 등등 다채로웠다. 심지어는 코딩을 체험해볼 수 있기도 했다. 한 번 더 체험을 해보겠다고 보채거나, 다른 곳으로 가자는 부모에게 생떼를 부리는 것은 스위스 아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고, 체험하는 아이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 역시 스위스 부모도 똑같았다.
이날 아이는 박물관 입장료와는 별도였던 '스위스 초콜릿 어드벤처'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다. 입장권을 구입하는데 매표원이 그러더라. 스위스패스로 할인을 받으니 이 프로그램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조금 망설이던 사이 옆 매표원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 티켓을 구입하는 현지인을 보고 나 역시 매표원에게 설득되고 말았다. 어드벤처라는 말 때문에 무섭지는 않냐고 물었지만 아주 느리다는 답변에 안도 반, 재미없으면 어쩌나 염려 반의 마음이었다.
정말 느린 배를 타고서 스위스 초콜릿 역사의 순간순간이 연출된 작은 방들을 따라가 보는 체험이었다. 게다가 기본 설명은 독어로 영어 번역기를 들고 체험에 임해야 했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형식의 전시라 나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끝까지 영어 번역기를 귀에 바짝 대고 있는 아이 모습도 귀여웠고, 마지막에는 린트 초콜릿도 나눠 주니 입 역시 만족할 수 있었다.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표를 구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기는 할 것 같다. 박물관의 체험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기 때문이다.
자연을 만끽하러 온 스위스에서 무슨 박물관이냐 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와 동반한 여행이라면, 특히 교통 수단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충분히 방문 해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아마 기차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하루 종일 있어도 나가겠다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특별히 교통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집의 일곱살 아이도 이것을 해봤다 저것을 해봤다 이 곳으로 들어갔다 저곳으로 들어갔다 하며 매우 바쁘게 돌아다녔다. 빨리 나가자고 하지 않고 이리저리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둘러본 것을 보면 부모에게도 합격점! 비 오는 첫 일정으로는 성공이었다.
<소요 비용>
- 기본 입장료는 성인 30CHF, 6세~16세 15CHF (6세 미만 무료)
가족권 65CHF에서 스위스패스 50% 할인 32.5CHF
- 스위스 초콜릿 어드벤처 (성인 2인, 아동 1인) 31CHF
- 입구의 카페테리아에서 식사 28.85CHF
- 갈 때 유람선, 올 때 버스 모두 스위스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