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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높은 동화 마을, 베기스에서 놀다

일곱살과 스위스 일주일

by 여유수집가

점점 시차에 적응이 되어가는 것일까? 어제는 새벽 3시부터 뒤척였다면 오늘은 새벽 4시부터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른 시간이지만 나아지고 있는 것이니까. 비가 그치고 점점 구름이 걷힐 것이라는 일기 예보. 기대를 갖고 창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오늘마저 날씨는 내 편이 아닌 것일까. 낙담은 일렀다. 점점 개인다는 예보를 믿고, 리기산에 오르기로 했다.


서울에서의 계획은 이동이 더 편리하다는 노선을 따라 비츠나우로 가서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계획된 노선의 반대, 베기스로 향했다. 예쁜 마을이라는 베기스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유람선에 오르자 비는 그쳤고, 구름이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희망이 생겼다. 유람선에서 보내는 40여분의 시간. 아이는 코코아를 마시며 말했다. "모든 게 다 아름다워."


작년 가을,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탔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선명히 기억난다. 하지만 스위스 유람선들은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물 흐르듯 움직이는 조용함, 커피를 마시면서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커피 향기가 풍경에 더 깊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고.


산 아래는 드문드문 마을이 있고, 산 중턱 이상은 빼곡하게 나무들이 채우고 있고.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장면을 계속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훌쩍 40여분이 지났고, 베기스에 도착했다. 선착장 옆에서 우리를 반긴 것은 작은 메리고라운드. 이것부터 베기스는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라만 보던 동화 속을 직접 걷는 기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놀이터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이 놀이터는 학교 안에 있는 놀이터였다. 혹시 수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공사를 하시는 인부분들만 지나다니실 뿐 잔디밭 운동장과 놀이터는 고요하기만 했다. 방학인가 보다 생각하고 놀이터를 우리 차지로 만들었다. 뒤로는 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호수가 보이는 학교 그리고 놀이터. 운동장에는 싱싱한 초록 잔디가 쭉 깔려있고, 놀이터 바닥은 모래가 아닌 나무껍질들이었다. 미끄럼틀과 그네 그물이 아닌 놀이기구 역시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곳. 자연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 더욱 부러웠다.


평소 겁이 많은 아이에게도 나무는 안정감을 주나 보다. 흔들 다리도 척척 건너겠노라 도전하고, 나무 정글짐도 몇 번이고 넘어 다녔다. 이왕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야 하는 날씨. 자연 속에서 부모의 마음도 너그러워져 재촉 대신 충분히 즐기는 시간을 선택했다.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하고, 잔디밭 달리기까지 도돌이표로 반복되어도 즐거움이 더욱 커지는 시간. 복병은 어느 순간 스윽 나타나 놀이터 옆 벤치를 차지한 고등학생들의 담배였다. 점점 더 짙어만 지는 담배 연기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으로 아이를 설득해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 궁금증에 들여다본 건물 안은 체육관이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뛰며 수업을 하고 있더라. 창문으로 우리가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방해는 되지 않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시선이 돌려지지는 않았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리기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다들 이 오르막 코스 때문에 비츠나우로 가는 것을 권한다. 하지만 뒤 돌아 걸으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과 그 끝의 호수는 너무 아름다웠다. 오르막 길쯤은 가뿐하게 만드는 풍경의 힘이었다. 물론 아이 역시 손에 들린 헬로키티 아이스크림으로 인해 씩씩하게 걸었고.


스위스의 모든 마을이 이럴까. 자연 친화적인 놀이터가 있고, 자연에 둘러싸여 고요하고, 낮은 건물들에 동화 같은 모습을 간직한 것. 세계행복지수에서 스위스가 늘 최상위권에 있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그 안에서 삶의 여유로움. 지금은 다른 생각 다 잊고 나 역시 스위스 사람들처럼 높은 행복지수를 만끽하고 싶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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