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과 스위스 일주일
이제 드디어 산들의 여왕이라는 리기산으로 간다. 베기스에서 10여분 케이블카를 타고, 리기 칼트발트로 가서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클룸으로 향하는 코스다. 구름은 땅 가까이에서부터 걷혀 점점 더 올라갈수록 짙어졌다. 케이블카를 타자마자 보이는 아래로의 풍경은 환상적이었지만 올라갈수록 구름이 우리를 가둬 아쉬움은 커지고, 한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래로부터 날씨가 개고 있으니 그 기운이 점점 더 위로 올라올 것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구름에 갇혀 있어볼까. 구름 한가운데 머무는 것도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어 나쁘지 않았다.
베기스의 놀이터에서 너무 신나게 놀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구름이 걷힌 리기산을 보겠다는 의지 때문일까. 아이는 리기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는 맥주를 마시며, 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구름은 걷힐 듯 말 듯 밀당을 하며 아래로의 모습을 감질나게 보여주었다. 컨디션도 기분도 좋아진 아이와 함께 구름마다 이름을 붙이며 시간을 보낸 것도 한 시간여.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하이킹을 하며 리기 칼트발트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걷다 보면 구름이 걷히겠지 마지막까지 희망하면서.
오늘은 '동화 구출작전'이 아닌 '동요 구출작전' 놀이를 하며 아이와 함께 걸었다. 동요를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부르는 놀이였다. 이야기를 말이 되게 이어야 하고, 대사를 배역과 줄거리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동화 구출작전'보다는 훨씬 쉬운 놀이였다. 하이킹을 더욱 신나게 만드는 재미도 있었고. 예상대로라고 하면 리기산 정상인 리기클룸에서 리기 칼트발트까지는 걸어서 50여분 남짓 소요되는 거리였다. 일곱살 나이를 고려했을 때는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런데 한 20여분 걸었을까. 아이는 멈춰서는 횟수가 늘었고, 결국 다리가 아프다고 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점점 걷히고 있어 산 저 아래가 잘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째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목마를 태우기로 했다.
급한 불을 끄고, 아이를 목마에 태워 내려가는 길. 리키 칼트발트 전의 작은 기차역에 산악열차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기차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자 따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입에서 나온 말, 그냥 저 기차 타자! 유모차 손님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지금부터 뛴다면 저들이 기차에 오를 동안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망설이던 남편도 아이의 묵직한 무게 때문인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사히 기차에 올랐다. 하이킹이 훨씬 더 여유로워요하며 손을 흔들다 허겁지겁 기차에 올라탄 우리의 모습이 우습기는 했지만 고생보다는 나을터였다.
산악열차를 타고 비츠나우까지 와서 비츠나우에서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가는 길. 하이킹을 끝까지 했노라면 아마 리기는 우리에게 말끔한 산 아래의 모습을 보여주었겠다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아주 보지 못한 것은 아니고, 산악열차와 유람선에서 근사한 풍경을 즐겼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열차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맞으며 달리는 산악열차. 열차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온전히 구름이 걷히기를 바라는 내 모습이 욕심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구름도 자연의 일부라고, 그저 자연 그대로를 느끼라고 리기산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