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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차, 이웃이 있는 삶 - 스마일러, 난타

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by 여유수집가

내가 머무는 숙소는 총 6집이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각각 다른 구성원으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머무는 시간은 같지만 보내는 방법은 다 다르다. 그중에 뚜벅이는 나 혼자이고. 오늘도 어느 때처럼 제일 부지런히 나설 채비를 한다. 태풍 예보가 있던 터라 얇은 바람막이, 두꺼운 바람막이 다 챙겨서 출동이다.


현관을 나서려는데 사천에서 온 엄마가 묻는다. 오늘은 어디를 가느냐고. 그러더니 같이 가잖다. 다른 두 집과 함께 동물카페인 스마일러에 가기로 했단다. 태풍 예보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가려고 했던 길, 하이디에게 묻는다. 어디 갈래. 당연히 하이디의 대답은 친구들과 같이 가는 동물카페. 버스를 놓칠까 길을 헤맬까 하는 걱정은 내려놓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할놀이도 멀리 보내고 몸 편한 여행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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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라면 찾지 않았을 장소였다. 제주다운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물원에 비하면 너무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동물 체험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무섭다며 쉽게 가까이 가지도 못했던 동물들을 웃으며 쓰다듬는 하이디 때문이다. 일곱살이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들이 옆에 있기 때문인지 친절한 선생님 때문인지 충분한 기회와 시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이디는 또 부쩍 자란 모습을 내게 보여 주었다.


고만고만한 8명의 아이들이 독차지 한 공간. 함께 몰려다니며 토끼에게 기니피그에게 돼지에게 당근을 주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니꺼 내꺼 하지 않고 서로 당근을 나눠주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순서를 기다려주고, 겁내며 툭 당근을 던지고 가는 동생에게 하나도 안 무섭다며 다독여준다. "기니피그는 당근을 손에 잡고 먹어", "토끼는 배가 부른가봐" 동물들의 먹이 먹는 모습을 살피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함께 하는 즐거움 속에서 하이디는 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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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까지 함께 먹고 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느라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충분히 놀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 속에서 아이들은 동물과 더욱 친해지고, 서로 더욱 친해진다. 모든 문제의 답은 시간에 있지 않을까. 충분히 기다려주면 무섭던 도마뱀도 친근해지고, 내 손을 먹지는 않을까 겁나던 동물 먹이주기도 용기 내서 할 수 있게 됐다. 여유 있는 한 달이 참 고마운 순간이다.


다들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 우리는 난타 공연장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하이디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예매해둔 일정이었다. 넌버벌 퍼포먼스이기는 하지만 어른들 시선에 맞춰 준비된 공연인데 일곱살이 과연 재미있게 볼까 걱정이 됐다. 돈 아까운 것은 아닌지. 늘 그렇듯 미리 걱정하는 것은 어른 몫이다. 하이디는 앞에 앉아있는 관객들이 뒤를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깔깔 웃으며 난타공연을 즐겼다.


20170914_183329.jpg 핫소스가 제일 좋았다며, 역할놀이에서 매번 핫소스 역할을 하는 하이디

두드리는 퍼포먼스에는 감탄사를, 넌버벌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이상한 소리로 하는 말들에는 까르르 웃음을, 관객들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줬다. 너무 재미있게 본 여파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하이디는 내게 난타 역할놀이를 강요했다. 메뉴를 소개하고 요리를 하는 놀이였다. 말을 할 수 없어서 이상한 소리로 의사를 표현해야 했고, 두드리며 소리를 내야 했다. 불 뿜는 모습까지 따라 하는 일곱살의 흡수력이 놀라웠다. 게다가 한 번 더 보고 싶단다. 그래, 다음 난타는 서울에서 보자.


느지막이 집에 돌아오니 방 문 앞에 봉투 하나가 걸려있다. 꼭 한 번 가봐야지 했던 유명한 가게의 츄러스다. 오늘 우리를 스마일러, 동물카페로 이끈 엄마의 선물이었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웃사촌의 정을 이곳에서 느낀다. 좋은 곳에는 함께 가고, 맛있는 음식은 서로 나누고, 서로의 집에 들락날락하며 함께 크는 아이들과 그 모습이 든든한 엄마들. 왜 아이들은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하는지 제주에서 새삼스레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일곱살 하이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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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난타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하이디와 엄마

일기설명: 오늘은 난타공연 갔다. 아무래도 헤드 세프가 제일 웃겼다.



헤드 세프가 관객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데

말을 하지 못하니 의성어를 섞어서 이상한 소리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 모습에 자지러지게 웃던 하이디.

너무 웃긴 나머지 스스로 "웃음아, 멈춰라!" 주문을 외우더라.


일곱살 마음에도 통하는 공연.

나 역시 너무 즐거웠고, 관객들의 표정과 웃음소리에서 모두 함께 즐거움이 느껴졌다.

남녀노소, 내국인 외국인 불문하고 모두의 마음에 닿는 공연.

이게 바로 국내 최정상, 난타의 힘일 거다.




<뚜벅이 이동 경로>

1) 레이지마마(곽지모물) > 친구네 차 > 스마일러(동물카페)

2) 스마일러 > 친구네 차 > 반딧불한담(점심식사)

3) 반딧불한담 > 택시 > 난타 공연장

* 난타 공연장까지 가는 버스는 난타 공연 시간과 배차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 이동

4) 난타 공연장 > 택시 > 신광사거리 > 202(배차간격 15~20분) > 레이지마마(곽지모물)

* 난타 공연장에서 시내 중심부까지는 택시로 이동하고, 나머지 1시간 정도 거리는 버스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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