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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차, 제주다움을 누리다 - 제주돌문화공원, 벨롱장

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by 여유수집가

"제일 제주다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멜리에를 떠올리게 하는 프랑스인 관광객은 이곳을 이렇게 평했다. 제주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난 뒤부터 나의 제주돌문화공원 앓이는 시작됐다. 어느 봄에는 주차장까지 갔다가 너무 깊이 잠든 하이디 때문에 돌아왔고, 어느 여름에는 갑자기 내린 비에 차를 돌렸었다. 그리고 이번 제주한달에서는 맞은편 에코랜드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 또 한 번은 비가 와서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 제주. 이번마저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삼세번이면 득한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늘을 흐렸고, 소나기 예보가 있었다. 이번에는 비가 와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비옷과 우산을 단단히 챙겼다. "3코스를 다 돌기는 어려울 테니 1, 2코스만 돌아볼까?" 제주돌문화공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내게 남편은 말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야. 제주 다우려니 생각하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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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대로 부푼 마음의 바람을 꺼뜨리고 싶지만 초가집으로 지어진 매표소부터 남다른 것을 어떻게 하나. '돌'이라는 말이 주는 묵직함에 100만 평이라는 드넓은 규모는 내 시야를 넓히고 넓혀 저 너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법 같은 용기를 건넨다. 거기에 곶자왈의 원시림은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서 살아남아 제주의 시작과 내가 밟고 선 엄청난 시간의 거리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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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숲으로 이루어진 자연이 전부가 아니었다. 제주 탄생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이 더해져 공원은 신비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매일 500명의 아들을 위해 죽을 끓이던 설문대할망이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는 '죽솥'과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늘연못',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신이라는 설문대할망의 아들이니 오백장군 역시 얼마나 키가 컸겠나. 그 거대함으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하는 오백장군 군상. 곳곳에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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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를 거쳐 2코스로 들어오면 이제는 제주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돌문화를 곶자왈 숲길이 안내한다.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이디는 자연과 역사 속에 녹아들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한다. 자연이 좋구나, 돌이 근사하구나, 우리 삶 속에 돌이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었구나. 어른다운 생각만 있었다면 잔잔하게 끝났을 산책이었다. 이 집은 창문이 낮아 백설공주 난쟁이가 살고, 이 집은 캄캄하니 뱀파이어가 살 거라는 하이디의 이야기에 산책은 기분 좋은 파도를 일으킨다.


하루 종일도 머무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내 기대와 벅참에 하늘이 시샘을 했는지 빗방울을 뿌렸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성공한 방문이니 한 번 더 와야 하지 않을까. 3코스는 다음 방문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비를 피해 점심을 먹고, 다음은 제주다움을 또 한 번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오름으로 향했다. 백약이오름, 아부오름을 찾았지만 하이디는 깊은 잠을 깨지 않았고 나는 주차장에서, 남편은 홀로 정상에 오르며 오름을 누렸다. 곤히 잠든 하이디를 바라보며 애달아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 더 오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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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아쉬움을 해결하면 된다. 지난번 세화 벨롱장 방문에서 구입했던 바지가 너무 편해 한 벌뿐인 것이 안타까웠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것이 제주 그리고 벨롱장다웠다. 이번 벨롱장은 가시리란다. 지난번에 샀던 바지를 입고, 그 바지를 사러 가시리로 갔다. 두 바퀴를 돌면서 다른 것들을 더 사고 싶은 마음이 요동쳤지만 참고 또 참았다. 예쁜 소품들로만 제주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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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롱장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해가 진다. 빨갛고 빨간 해가 주황빛, 붉은빛, 보랏빛, 하늘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사라져 간다. 하이디와 함께 했던 제주에서의 한 달이 무궁무진한 빛을 내 마음에 남긴 것처럼 하늘도 다양한 빛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사라져 가는 해를 붙잡고 싶듯 끝나가는 한 달을 붙잡고 싶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제주한달을 시작했던 그 날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재미있게는 어렵겠지만 또 다른 색을 더하며 한 번 더 제주한달을 근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 정말 아쉽다!




<뚜벅이 이동 경로>

오늘은 주말아빠덕분에 뚜벅이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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