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알람이 울린다. 제주 한 달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던 알람으로 깨어난 아침이다. 짐을 챙겨야 했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한 달이 지나고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유독 손놀림이 느리다. 내 의지로 짐을 싸고 있음이 분명한데 누군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 같다. 인상 팍 쓰고 한숨 푹 쉬는 내 모습에 남편이 말을 건다. "빨리 챙겨서 곽지 들렀다 가자." 나를 너무 잘 아는 남편이다. 곽지라는 말에 내 몸은 자동 반응해 다시 움직임은 빨라진다.
큰 캐리어 하나와 작은 캐리어 하나가 벌렸던 입을 닫았고, 우리의 원룸은 처음 설레는 맘으로 문을 열었던 그 상태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마당에 있던 킥보드를 실었다. 이제 우리만 차에 오르면 된다. 레이지 마마의 정식 퇴거일은 월요일인 내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서울로 가야 하는 나는 부득이 하루 먼저 이별을 해야 했다. 아직은 조용한 일요일 아침. 매니저님이 모두를 불러주신다. 잘 가. 즐거웠어. 또 봐. 제주도에 또와. 제주도에서 보자. 보고 싶을 거야. 애정 넘치는 인사와 애틋한 마음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한 달 동안 소박하게 느릿하게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을 알게 해 준 너무 따뜻했던 레이지 마마가 점점 멀어진다. 막상 떠나야 하니 아쉬운 것 투성이다. 걸어서 15분이면 올 수 있는 곽지해수욕장은 왜 몇 번 밖에 오지 않았을까. 곽금초등학교 잔디밭은 주말에 한 번 들어가 볼걸. 마지막 날이 돼서야 먹어본 곽지의 명물, 피시 앤 칩스는 왜 이제야 먹었을까. 버스로 가도 넉넉하게 20분이면 갈 수 있는 애월도서관은 왜 한 번도 가지 않았을까. 지나치는 장소마다 모두 아쉬움이다.
나만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1시 40분 배를 타기 위해 제주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하이디는 계속 레이지 마마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고, 제주도 굿바이 송을 직접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안녕 친구들, 안녕 레이지 마마, 안녕 곽지모물, 안녕 제주도 나 다시 올게."
제주에 남은 내 아쉬움은 하나도 아랑곳 않고 배는 거침없이 제주항을 떠난다. 거기에 더해 거침없이 부는 바람은 아쉬움을 얼른 바람에 실어 제주로 돌려보내라 하지만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쉬움이 남아있어야 다시 올 동력이 되지 않을까. 꼭 다시 오고 싶었다. 잠깐 스치는 여행 말고 아쉬움을 모두 다 해결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말이다.
목포항에 점점 가까워 오는데 조용하던 갑판이 시끄러워진다. 저 멀리 옆으로 누워 있는 세월호가 보인다. 눈이 시큰거리고 목이 콱 메어온다. 항구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나가며, 이별과 희망이 공존한다. 항구로 가는 길에서 만난 세월호는 내게 꼭 그러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오고 천 개의 바람이 되었을 마음을 날려 보낸다. 최선과 진실이 없었던 미안함과 앞으로 사회는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공존한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목포항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왔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서울까지 다시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점점 서울에 가까워지며 계속 운전을 하는 남편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고 좋아하는데 내 마음은 답답해졌다. 한 달 동안 보기 힘들었던 높은 건물들과 화려한 불빛이 눈을 피곤하게 했고 바쁜 시간 속으로 들어왔음이 실감되며 어색했다. 조금 강하게 말하면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제주 한 달 이후에도 내게는 아직 8개월 남짓의 육아휴직 기간이 남았다. 아무리 바쁜 서울이라도 내가 의식적으로 느린 시간을 만들면 되는 거다. 가야 할 회사도 없고 해내야만 할 일도 없는데 제주에서처럼 하이디와 함께 느긋하게 살면 되는 거다. 물론 자연은 애써 찾아다녀야겠지만. 그러다 지치면 또 가면 되지 않을까. 내 사랑 제주에. 그렇게 잠시만 안녕!
<뚜벅이 이동 경로>
오늘은 주말아빠덕분에 뚜벅이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