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 엄마의 친구
엄마의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그러니까 엄마께서 지인을 의심하는 얘기는 맞는 말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닙니다. 어느 때인가부터 엄마께서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모임을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임인데 다녀오셔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겨우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 모임에 있는 A 있잖아. 그 사람이 완전 모두를 속이는 엄청난 일을 꾸미는 걸 내가 어쩌다 다 보게 된 거야.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 텐데. 큰일이야.”
그 후로도 몇 번 비슷한 얘기를 하시기에 상황을 대충 짐작하는 제가 엄마를 꼭 껴안으며 얘기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A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는 건 알겠지만, A 씨가 일을 꾸밀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냐.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도 않고. 이건 엄마 머릿속에 있는 거야. 내 말을 믿어.”
처음으로 망상 증상을 보이셔서 저도 당황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를 의심한 게 아니라 다행이지만 언젠가 저를 의심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몇 주 후 엄마가 환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얘, 내가 그게 진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꿈속에서인지 언젠가 내 눈앞에 연극 무대처럼 펼쳐졌거든. A가 나는 잘 모르는 B랑 쿵짝이 맞아서 완전 모두를 망하게 하려고 해서 이걸 누구에게 말해야 하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쩔 줄을 몰랐는데, 그게 정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고.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저는 가끔 치매 어르신의 보호자는 장애아의 부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난히 도움이 필요하거나 약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아이인 저에게 은근슬쩍 잘못을 떠넘기는 경우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비교하여 장애인이 눈에 띄지 않고 행동 장애가 있는 어린이까지도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아프구나, 다르구나, 받아들이기에는 모두의 삶이 팍팍해서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예전에 잘 지내던 치매 어르신과 어려움이 생기면 안타까운 마음보다 업신여기는 마음이 먼저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엄마의 친구나 지인들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엄마는 당연히 본인의 상태를 말하기 싫어하셨지만 저는 평소에 제가 처한 상황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마의 상태도 엄마를 아끼는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상대의 약점을 스스로 군림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어찌해야 할지 고민되었습니다. 그래도 엄마와 지인을 함께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편하게 엄마께서 센터를 이용하시는 것과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신 사실을 일상으로 나누었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얘기하면 듣는 분도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엄마께서 한동안 나가지 않으시던 동창회에 한 번 나가시겠다고 했습니다. 가끔 얼굴 본 지 오래됐다는 걱정의 메시지를 받는 걸 알아서 당분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제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엄마를 도와드리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앱으로 모임 장소까지 택시를 불러 드리고, 돌아오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돌아오시는 친구분이 있으신 걸 알아서 믿기로 했습니다. 제가 미리 친구께 연락드려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싶었지만, 무엇이 좋은 방법인지 몰랐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으시는 엄마가 안 된 마음도 있는 한 편, 또 엄마께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이동 상황을 표시할 수 있는 앱을 확인하니 많이 헤매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어땠냐고 여쭤봤더니 힘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갈 때는 네가 택시를 불러줘서 식당 앞에 갔는데, 올 때는 내가 돈을 안 가져갔잖아.”
“안 가져가긴. 엄마 핸드폰 케이스에 체크카드하고 현금이 있는데.”
“그래? 몰라. 어쨌든 내 친구 XX가 고생했어. 걔는 참 부드럽게 잘 얘기하더라. 나를 어린이 다루듯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알려줬어. 어쩜 그러니? 힘들었는데 결국 집에 잘 왔어.”
나중에 동창회 얘기를 한 번 더 하셨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좋더라. 다 따뜻하게 얘기하고 나를 정말 걱정해 줘.”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엄마의 상태를 잘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를 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얘기하지 않아도 엄마의 어려움이 보이는 사람은 알아서 도와줄 것이고, 제가 얘기하더라도 어려움이 보이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어떤 분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싶다가 어느 순간 아쉬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조언을 구했던 분이 좀 냉정하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결국 돌봄은 가족의 몫이에요. 가족이 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하면 돼요.”
언니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 엄마 지인들과는 가끔 같이 만납니다. 엄마의 웰빙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으니 재미도 있어요. 가끔 엄마와 제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 때 제삼자 입장에서 우리 둘 다 설득해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대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이제 예전하고 다르게 엄마와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기보다는 엄마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거거든.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면 꼭 엄마가 대접하고, 선물도 즐겁게 예전보다 더 자주 했으면 좋겠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베푸는 마음을 가지면 엄마가 반가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께서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듭니다. 주간보호센터의 어르신과 직원과 소통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끔 엄마를 기억해서 연락해 주시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