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아픈 데가 하나도 없었거든. 학생이었을 때는 입원 한번 해보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어.”
그랬던 엄마가 언제부터 하루에 약을 열 알쯤 드시고 몇 년에 한 번씩 입원을 하십니다. 제가 아직도 좀 아쉬운 것은 엄마가 50대에 혈압약을 너무 쉽게 드시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혈압약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생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간단하게 복약으로 대신할 만큼 대수롭지 않은 일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60대 이후에 당뇨병이 발병한 게 다행이라고 할까요.
사실 예전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은 대부분 서로 영향을 주는 대표적이고 흔한 성인병이라고 생각해서 세 가지 약을 드시는 것도 그리 큰 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드시긴 하지만 엄마께서는 혈당 관리도 잘되어 크게 위험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엄마의 건강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자 아쉬운 점이 많아졌습니다.
치매 어르신에게도 만성질환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직접적으로 치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당뇨병은 뇌혈관 당뇨병은 뇌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위험인자로서 치매를 일으키는 위험요인이며, 특히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 치매의 발병 위험을 높입니다.”
당뇨는 또 다른 중증질환의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는 십 년 전쯤 콩팥에 염증이 생기는 신우신염이 피를 타고 도는 패혈증으로 진행되면서 1년 정도 계속 입, 퇴원을 반복하셨고, 올해 초에는 방광암 초기 진단을 받으시고 수술을 한 후 방광내약물주입 처치를 받았습니다. 두 경우 다 당뇨가 주요 위험인자였습니다.
주위 어르신들을 보면 특별히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제는 병원 예약과 진료 관리를 제가 해야 한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또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도 계속 함께 움직여야 하고, 엄마께서 긴 대기시간과 여정으로 컨디션이 나빠지시면 인지능력에도 바로 영향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호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죠. 치매 어르신의 경우는 수술 후 섬망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줄이고 줄여도
저는 되도록 일을 간단히 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일이 무지 많아요. 치매를 포함한 중증질환의 치료만 3차 병원에서 하고, 고혈압과 당뇨는 집 근처 의원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이사를 해서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이 멀어져서 새로 발병한 방광암은 근처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만 환자의 개별적인 증상과 병의 진행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치매는 이전 대학병원에 계속 다닙니다. 당뇨합병증, 백내장, 녹내장 추적 검사를 위해 방문하는 안과도 엄마 혼자 다니실 때보다 주기를 늘렸습니다. 그렇다고 통증이 있는데 치과를 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엄마께서 목 근처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따가운 데다 뾰루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혹시 엄마께서 때를 밀듯 자극적으로 만져서 그런 건 아닌가 싶어서 몇 주를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큰 밴드를 붙여 손이 닿지 않도록 해보고 통풍이 잘되도록 아무것도 붙이지 않고도 지내봤는데 뾰루지가 점점 커지고 달아오른 피부도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피부과에 가니 바로 레이저로 제거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원인을 알기 어렵고 큰 질병의 치료가 늦어질 수 있으니 대학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선 레이저로 제거 하고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다시 와서 진단서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또 새로운 병으로 엄마와 함께 대학 병원 예약, 진료, 치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그런 제가 적극적이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엄마는 작년 여름부터 심한 두통을 호소하셨습니다. 특히 아침에 제일 힘들어하셨어요. 작년 가을에 찍은 MRI에서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는 혈압이 높아서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방광암이 발병한 데다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시다 보니 작년 겨울은 엄마와 저 둘 다에게 힘든 계절이었습니다.
엄마께서 가끔 웨어러블을 착용하고 주무셔서 수면 중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신경과 주치의에게 관련이 있냐고 여쭤봤지만 별 얘기 안 하셔서 넘어갔는데 방광암으로 집 근처 3차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수술 후 밤에 계속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하고 주무셨더니 다음 날 컨디션이 평소보다도 좋았습니다. 역시 산소포화도의 문제인가 싶어서 다음 신경과 진료 때 이 상황을 말했더니 수면무호흡증 때문에 두통이 심할 수 있다고 수면센터 신경과 전문의에게 진료 의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룻밤 입원하면서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이후에 양압기 처방 받는 과정이 번거로웠던 건 사실입니다. 특히 기억력이 떨어지는 엄마께서 양압기 착용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힘들어 처음 한 달은 제가 매일 밤 네댓 번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양압기 순응 기간이 끝나고 나니 엄마의 두통이 훨씬 호전되었고, 아침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수면무호흡증이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자는 동안 산소가 뇌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치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엄마께서 젊었을 때 코골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리 양압기를 이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가 수면무호흡증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던 것은 이 증상이 엄마와 저의 일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주간보호센터에 처음 가실 때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아이와 보호자처럼 매일 아침 티격태격했는데 엄마께서 도저히 못 일어나시겠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금에야 엄마를 부드럽게 깨우는 방법을 찾았지만 그때는 그냥 다 그만두고 제가 독립해서 사는 것이 방법일까도 고민했습니다.
- "적당한" 관리
저는 어르신의 건강은 깔끔한 치료보다는 적당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치과 의사가 저에게 얘기를 해줬어요.
“치과 치료라는 게 충치가 있는 부분을 갈아내는 것이죠. 많이 갈아낸다고 충치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어느 정도의 충치까지는 건드리지 않고, 치료를 시작하면 갈아내다가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한달까요. 그래서 장기적인 치료 계획과 관리가 중요하죠.”
눈에 보이는 치아를 예로 들었지만 결국은 치매 어르신의 건강관리도 그 적당한 선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엄마께 처방 약을 제외한 영양제를 드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양한 약을 드시는데 혹시라도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은 약이 있을 수도 있고, 이미 많은 약을 드시고 있어서 간에 무리가 될 수도 있고요.
어떤 분은 약을 다 끊고 먹는 것만 잘 관리해도 된다고 강하게 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제 인생이 아니고 엄마의 인생이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큰 결정을 제가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약을 먹는 행동이 어떤 의미에서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약의 효과를 먼저 믿고 보는 플라시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엄마의 경우 질병은 달라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 치매를 진료하는 신경과 의사를 포함하여 모든 의사가 권장하는 것은 일치합니다.
1. 건강한 식습관
(1) 충분한 야채 섭취
(2) 육류를 제외한 단백질 포함
(3) 단 음식이나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초가공식품 (가당 음료, 스낵, 햄, 인스턴트 식품 등) 먹지 않기
2. 꾸준한 운동
위험하지 않은 운동 (걷기, 스트레칭, 아쿠아로빅 등)을 꾸준히 함.
3. 스트레스 감소
긍정적 자세
충분한 휴식
즐거운 활동
4. 타인과의 교류
가족이나 친구와 꾸준한 교감과 대화
질병의 원인은 알기도 어렵고 다양하지만,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원칙에 얽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탄산음료는 먹지 않더라도 가끔 맛있는 디저트 한 조각은 생활에 액센트가 되겠지요, 실천이 어려워도 방향을 염두에 두면 완치는 몰라도 즐거운 일상에는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