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성(性)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사회적 규범일 때가 많아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무거운 마음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군가 읽으면서 나에게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니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으면 합니다. 말할 수 없을 때 상처는 깊어집니다.
신문에서 방문요양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원치 않는 접촉,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사건 기사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사적인 공간에서 돌봄이라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요양보호사가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경로로 다양한 얘기를 들으면서 치매 어르신 부적절한 성적 행동(inappropriate sexual behaviors)이 치매의 증상이고 여러 사람을 어렵게 한다는 관점에서 깊이 고민할 부분들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엄마께서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고 했더니 지인이 본인의 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센터에 다니신다며 잠깐 멈칫 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 음란 마귀에 씌었나 봐요. 함께 다니시는 할아버지 한 분에게 플러팅을 엄청나게 하신다는 거예요. 센터에서 메모장 같은데 자꾸 플러팅 얘기가 나오니 제가 좀 창피하기도 하고……. 말씀을 드려도 변화가 없네요.”
아직도 센터에 가는 것이 힘든 엄마를 생각한 저는 오히려 센터 다니시는 게 즐겁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불편해하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문제겠다 싶었습니다.
“어휴, 그건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잖아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근데 센터는 즐겁게 다니세요. 매일 매일 정말 가고 싶어 하세요. 아니 진짜 친구도 많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도 별로 친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은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어르신께서 직접적으로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센터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요양보호사가 적절히 제동을 걸어주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만약에 두 어르신 모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남아 있다면 주위 사람들이 어르신들의 호감 표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4급 어르신께서 어떤 남자 어르신에게 가깝게 접근하고 도와주겠다면서 화장실에 같이 가서 바지를 벗겼다며 요양원 계속 계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습니다. 시아버지를 돌보던 지인이 부적절한 접촉으로 힘들었다는 얘기까지 생각해 보니 혹시 치매 어르신이 가지는 드물지 않은 증상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 치매 어르신의 부적절한 성적 행동: 연구자료
자료를 찾아봤지만 연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영어 논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단, 대부분의 논문에서는 요양원 등 집단거주시설에서 의사 표현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두 어르신의 성관계 등은 부적절한 성적 행동 범위에 넣지 않습니다.
“Hypersexuality in dementia: A case presentation with discussion”(2013)
아무래도 의사들은 어떤 약물을 써서 치료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저는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곽용태 저)에 나오는 치매 어르신 딸의 대처가 시원했습니다. 원래 점잖던 아버지의 성적 행동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가 모실 수 없어서 딸의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팬티를 내리고 치근대서 놀랐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시면 일 끝내고 갈게요’ 하고 엉덩이를 툭 치고 보내면 금방 잊어먹어요.”
그러니 엄숙하게 치료법을 따지고 들기보다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스킬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 뇌를 다친 것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약한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상대를 불쌍하게 보는 마음과 무서워하는 마음이 부딪혀서 돌보는 사람이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의사 표현이 어려워지는 것은 치매 어르신의 증상이고, 이것이 부적절한 성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내외 국가 및 의료기관의 사이트에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른 가족,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의료진에게 불편하거나 염려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함.
▪ 부부라면 치매 어르신도 감정과 육체의 친밀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함.
▪가족이 매일 손을 잡거나 안는 등 애정 표현을 충분히 함.
▪ 어린이나 다른 노약자에게 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단호히 막아야 함. (이상 행동이 있을 때 치매 어르신과 어린이가 독대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함.)
▪ 이상 행동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살펴서 제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게 함.
▪ 다른 사람을 부인이나 남편으로 착각하거나 원치 않는 접촉을 할 때는 차분하게 적절치 않다고 얘기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점을 꾸준히 얘기 함.
▪ 드물게 공격적으로 되는 경우는 가라앉을 때까지 자리를 피하고 필요한 경우 계속 문제가 지속되면 경찰이나 의료진의 도움을 구함.
▪ 여러 방법을 강구하였는데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면 부작용의 위험이 있고,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약물치료를 고려할 수 있음.
- 가장 무서운 것은 주위 사람의 2차 가해
어쩌면 부적절한 성적 행동의 피해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문제를 얘기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주는 상처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문제를 보호자에게 언급하는 경우 보호자가 ‘우리 어머니/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여 마치 문제의 원인이 요양보호사에게 있다는 듯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홈카메라의 설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치매 어르신이 가족이나 친구를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할 때에 쉬쉬하며 피해자의 입을 막아버린다면 피해자와의 관계는 파탄 날 것입니다. 어르신이 분명 잘못한 일이고, 당한 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가해한 분의 체면을 세우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뜻밖의 상황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사람에게 '아픈 노인이 그런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혹은 '이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깊이 베인 상처는 아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보호자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바램이지만 절대 요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늘 타인의 행동을 판단하고 책임을 넘기고 비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책임이면 나는 그 깊은 수렁에 함께 빠지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주위 사람이 주는 상처가 더 무서운 것은 그 잘못이 정신과 육체의 질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편견에 악한 뿌리를 내린 이기심이기 때문입니다.
치매 어르신이 보이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족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를 사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달라진 엄마: 치매 이야기”는 유난히 깔끔하고 고상했던 다이앤의 이야기입니다. 치매 증상이 있기 전에는 본인이 치매 증상이 보이면 살기 싫다고 안락사를 원했던 다이앤이 천천히 치매가 진행되고 자식들은 고향을 떠나면서 딸 전남편의 삼촌(전 사돈?)인 덴즐과 가까워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덴즐의 영향으로 성격이나 생활환경도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뀌고 자녀들과 연락이 끊어지며 재산을 둘러싼 여러 어려움 겪습니다. 의료진과 법원의 판단으로 성년 후견인이 결정되는 과정을 설명했는데, 결국 자식들이 권리와 책임을 맡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에피소드의 마지막에서 사회자는 기자에게 질문합니다.
“자식들이 기억하는 단정한 엄마가 진짜인가 아니면 곁에 있는 새로운 사람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즐거운인생을 사는 엄마가 진짜인가?”
기자는 대답합니다.
“누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예전엔 자식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법적인 판단이 이루어졌다면 요즘 추세는 여러 인지적, 정신적 장애가 있더라도 본인의 뜻을 조금 더 따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저라면 어떨까 생각해도 어렵습니다.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능력과 기능이 많이 떨어져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른 나도 있겠죠. 그런데 도덕적, 법적 올무에 매여 내가 원하는 바를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