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 심플한 생활 환경

아름다운 물건과의 이별

by 솔바람

-무조건 버렸습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엄마는 물건을 버리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생활용품, 옷, 책, 영수증, 20년 묵은 서류까지, 무엇 하나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그 물건들이 엄마의 일부이자 존재 가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물건을 쌓아둘 수 없습니다. 집이 넓지 않기도 하지만, 만약 넓어도 물건을 줄여야 합니다.


엄마를 옆에서 살펴보면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모습을 봅니다. 눈이 안 보이는데 매일 10미터 쯤 떨어진 칠판을 보며 미적분을 새로 배우는 기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있던 물건의 자리를 기억 못할뿐더러 눈앞에 물건도 찾기 힘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약과 세안제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처럼 모든 물건을 서랍에 한꺼번에 넣어두면 외출 준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물건의 수를 최소화하여 한 눈에 들어오도록 돕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는 청소나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잘 찾지 못했습니다. 문을 잠그고 나가야 하는데 열쇠를 못 찾아 약속에 늦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물건을 정리하는 법을 익혔고, 해외 장기 출장을 다니면서 여행 가방 두어 개에 이삿짐을 싸고 집을 비운 경험이 여러 번 있어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익숙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면서도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혼자 사시던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신 후 거주하시던 아파트를 비우던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묵은 짐을 정리하며 폐기까지 도와주는 서비스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았을 지도 모릅니다. 분량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집을 정리하는 순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1. 나눔 물건 정리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여 가져갈 사람을 정리했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명에게 연락하지 않고, 한 명씩 연락하여 같은 물건을 여러 명이 원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옷은 직접 입어보는 것이 좋으므로 방문을 유도했으며, 가져가서 쓰레기가 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히 권유했습니다.


2. 대형 가전제품 무상 수거 서비스 신청

오래되고 가치가 높지 않은 가전제품은 미리 방문 날짜를 조정하여 무상 수거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3. 기증품 접수

중고거래는 이용해도 좋겠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물건이 좋은 곳에서 쓰이는 기쁨이 커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증 했습니다. 여러 번 기증을 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굿윌스토어’는 온라인으로 기증 접수가 가능하고, 일정 물량 이상은 방문 수거를 합니다. 단, 미리 신청하여야 내가 원하는 날에 수거가 가능합니다. 신청할 때는 물품 개수를 대략적으로 적고, 수거 전날에 조정하는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깨지지 않는 물건들은 미리 받아 놓은 대형 수거 비닐봉투에 담아 놓고 깨지는 물건은 충전재로 싼 후 박스에 넣었습니다.


4. 분리수거 및 대형생활폐기물 처리

분리수거도 까다롭습니다. 분리배출해야 하는 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대형생활폐기물은 한꺼번에 목록을 만들어 주민센터에서 스티커를 사서 배출했습니다. 경비실에서 빌린 카트로 내렸지만, 무거운 가구는 ‘숨고’를 통해 찾은 분께 비용을 협상하여 분리수거장에 내렸습니다.


5. 개인 정보가 포함된 서류 파쇄

주민번호 등 개인 정보가 포함된 서류는 한데 모아두었다가 보안문서파쇄업체를 이용해 처리했습니다. 일부 업체는 무료로 파쇄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 후회 없는 물건과의 이별

아직도 조금 아까운 것은 외할머니 댁에 있던 자개장입니다. 특별한 디자인이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물건이라 갖고 싶었지만, 놓을 곳이 없었습니다. 특히 엄마가 일곱 박스 쯤 되는 (나중에 결국 모두 버린) 옷과 생활용품을 우리집으로 가져와서 커다란 가구까지 고민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는 분께서 가져가시겠다고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아름다운 물건도 결국 짐이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사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야할 물건 목록은 항상 생깁니다. 꾸준히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필요한 다시 물건을 사더라도, 한 번 모든 것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지나치게 오래 고민하면 정리하는 기간이 길어져 끝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 물건을 정리할 때는 물론 엄마와 많이 부딪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래 버리라고 하지만, 저는 엄마가 어느 정도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많은 물건들이 사라지면 엄마 마음이 허전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나름 고민을 했습니다.


1. 가까운 분들께는 직접 나눔

엄마 친구 분들과 우리집에서 식사하는 날, 오신 분들께 골라 놓았던 옷을 드렸습니다. 엄마께 미리 말씀드렸데도 조금 망설이셨습니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옷을 나누었고, 이렇게 직접 드려야 휑한 옷장을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 묵혔다가 정리하기

기증하거나 버릴 물건들은 다용도실이나 제 옷장에 한동안 보관하며, 혹시라도 엄마가 찾으시면 꺼내기로 했습니다. 저도 고민이 많이 되는 물건들은 몇 달 동안 시간을 갖고 처분할 물건이 필요하지 않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 유용한 물건은 구매했습니다.


엄마와 처음 함께 살 때, 엄마는 경도인지장애 초기였고 운전도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열쇠를 찾는 일이 어려워서 현관 옆에 고리를 부착해 자동차키와 신발주걱을 걸어 두었습니다. 의자도 하나 두어 신발을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엄마의 핸드폰 케이스를 보면 참 잘 샀다고 합니다. 어깨 끈이 달린 밝은 가죽 케이스로, 체크카드를 넣고 아파트 키를 달아 어깨에 걸고 다니면 여기 저기 찾을 필요 없이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엄마께서 "이게 치약이 맞니?" "이게 안약이니?" 하고 묻는 일이 반복되면서 소형 라벨 프린터를 구입하여 물건에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이 덕분에 엄마도 훨씬 편해하십니다.


- 되도록 물건의 위치를 바꾸지 않습니다


엄마가 물건의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되도록 물건의 위치를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눈에 익숙한 것이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집의 인테리어도 그냥 두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욕실에 두는 핸드워시도 예전에는 지나가다 눈에 띄는 것을 하나씩 샀는데, 이제는 리필을 사고 기존 용기를 이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엄마 머릿속에 잘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엄마와 제가 중요한 것도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만을 남기는 뼈대와 같은 일상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배움인지도 모릅니다.

keyword
이전 20화치매와 성(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