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통수는 내가 쳤다

day-63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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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연소가 회사에 온 적이 있었다. 연소는 나의 관상 선생님이자 손금 선생님이다. 연소는 나의 회사 동료 몇 명을 알고 있다. 이날 회사에 왔을 때는 동료 하나와 같이 셋이 차를 마셨다. 동료의 관상과 손금을 본 연소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할 가능성이 있는 관상입니다. 예를 들어 은하 같은 경우는 사람을 잘 믿지만 한편 완전하게 믿는 경우도 없어서 그닥 배신당할 가능성이 없는데요, 당신의 경우에는 검증된 소수의 사람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믿는 도끼에 크게 찍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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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을 완전히 믿는 일은 없다. 완전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사람이 아닌 편이라고 생각하는 류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적은 딱 한 번이 있다. 그 돈을 빌려줄 때도 이 돈을 못 받아도 내 마음이 괜찮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뒤 yes, 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빌려준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같은 친구가 취업을 한 이후에 또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처음 빌려달라고 한 것보다 적은 액수였고 갚을 수 있음이 더 확실했지만 나는 칼같이 거절했다. 야, 이제는 카드론을 땡겨도 되고 이자가 좀 나와서 그렇지 너 돈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 다른 데서 동원할 수 있는 돈이면 나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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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면서 뒤통수 맞은 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 아무런 케이스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뒤통수를 맞는다는 게 누군가 약속을 된통 지키지 않아서 피해본 상황을 말하는 거라면 딱히 없다. 아 어학연수 갔을 때 자신 있게 기다리겠다던 남자 친구가 삼 개월 만에 이별을 통보해온 것을 빼고. 하지만 이별은 연애의 속성이기 때문에 딱히 엄청난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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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나 자신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현재의 나를 애먹게 하는 과거의 나. 가장 흔한 경우는 뻔히 필름 끊기고 아침에 토할 걸 알면서 술 마시는 나다. 다행히도 그런 나는 현재에 거의 소멸했다. 대신 최근까지 나를 자주 곤란하게 만드는 건, 나를 우월하다고 여기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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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는 독특한 리더를 만났다. 입사 초반에 팀 회의에서 리더가 우리 팀의 인재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회사에서 강조하는 주요 가치 외에 왜 우리 팀 버전의 가치관이 따로 있는지를 물었다. 그 모든 가치가 다 최우선 순위가 될 수는 없는데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나요? 나는 나중에 일대일 미팅에서 그 질문을 회의시간에 했다는 점을 리더에게 칭찬받았다. 대한민국에 지금껏 없었던 회사를 만들어 보는 것이 꿈이라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인사가 어떤 마인드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자주 설명했다. 귀가 얇은 편이기도 해서 나는 금방 그 방식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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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동기부여다. 정보는 비공개할 사유가 없으면 반드시 공개해라. 비용 사용에 애매한 느낌이 들면 이 지출에 대해서 전사에 공개해도 거리낌이 없는지를 기준으로 생각해라. 휴가는 권리이므로 승인받는 것이 아니다. 예외를 둘 때에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보가 된다. 인사가 자기가 일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면 회사가 망가진다. 이외에도 수많은 문장들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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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팀을 떠나면서 그런 말을 했다. 당신이 저랑 일한 것이 행운일 수도 있지만 불행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방식대로 그 말을 이해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회사가 변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변화를 퇴보로 여기고 있었다. 중립적인 시각의 변화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회사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공지사항을 읽지 않아서 일하기 힘들다는 동료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언짢았다. 하루 종일 코딩하는 사람들이 회사 시스템에 들어와서 공지사항을 모두 읽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애당초 공지사항을 읽기 힘든 사람들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맞다고 여기는 마음이 생각할 수 있는 눈을 가려버렸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 공지사항은 꼭 읽어 달라고 회사가 만든 게시판이다. 그것을 읽으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쪽에게도 문제의 상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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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는 그렇게도 맞는 것 같다. 과거의 나는 내가 합리적인 편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보가 돼버리는 것처럼, 내가 맞다고 여겨버린 순간 다 틀려버린 것 같다. 내가 잘 안다고 믿은 회사라는 것도 그저 내 주변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회사라는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은 믿음을 버리지 않아서 그 때문에 자주 낙담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이로 인해서 불필요하게 분노하거나 불필요하게 지쳐야 했다. 회사를 다닌다는 말보다 버틴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정말 불필요하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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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팔 차선 대로를 깔고 달려가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오솔길을 내서 그 길을 가야겠다. 길만 잘 낸다면 많이 화내거나 치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세미나 들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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