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day-71

by Lucie

1

초등학교 일 학년의 끝무렵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학원 선생님 중에는 김원준을 꼭 닮은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어렸지만 이 선생님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수줍었던 탓에 인사는 엄마가 시켰다. 선생님들이 있는 공간에 가서 그만둔다고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가기 전에 선생님한테 뽀뽀해주고 가야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서 냉큼 달려가서 선생님 볼에 뽀뽀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은근히 당황했던 모양이다. 학원 건물을 나서면서 그렇게 아무한테나 막 뽀뽀하면 안 된다고 단속했다.


2

중학교를 졸업하는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헤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우리는 여섯 명의 패거리였는데 서로 다른 네 곳의 고등학교로 흩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연락이 끊겨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스무 살이 되는 특정 날짜에 학교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아 이 얼마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아날로그적 약속이란 말인가! 몇 년 후 우리는 각자의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던 날 우리는 서로 이런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보는데 저날 꼭 학교 앞에 가서 만나야 돼? 안 만나도 돼지?


3

고3 때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이민을 갈 예정이었고, 우리는 그전에 미리 헤어졌다.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출국 전에 얼굴은 한 번 보기로 했다. 수능이 끝나서 늦잠 자고 놀고 있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갑자기 출국하게 돼서 지금 인천공항이라고 했다. 갑자기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택시를 타고 달려가야 하나. 곧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지금 와도 소용이 없다고 그는 나를 말렸다. 그때는 미국이 얼마나 멀고도 먼 지구 반대편의 나라였던지. 엄청난 생이별을 당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한 겨울에 얇은 점퍼를 입고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거닐었다. 지금은 해외에 있는 친구나 국내에 있는 친구나 몇 년에 한 번 보는 건 매 한 가지다.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인스타에서 자주 보고 카톡을 자주 하는 친구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4

오빠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은 세 식구가 되었다. 오빠는 사관학교에 입학해서 더 이상 집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 의료보험에서도 세대 분리가 되었다. 예전에 의료보험증이 나오던 시절 오빠 이름이 더 이상 그 리스트에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 번씩 학교에 오빠를 보러 가면 오빠가 먹고 싶은 걸 다 사줬다. 바로 몇 개월 전까지 집에 한 대 밖에 없는 컴퓨터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엄청 관대해진 오빠가 신기했다. 엄마는 밤마다 울고 이모들을 만날 때마다 울었다. 나만 오빠랑 이별한 게 아니라 엄마도 아들과 이별한 것이었다.


5

영어 기피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스물둘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서 살아보게 되었다. 학교 친구 한 명과 같이 출국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친구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배웅을 해주었다.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는 긴 여정 끝에 우리는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각자의 홈스테이 하우스가 달랐다. 첫날 각자 집에서 짐을 풀고 다음 날 친구를 시내에서 만나서 밥을 먹었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친구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집 생각이 난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별로 집이 그립지 않았다. 이사를 두 번쯤 했을 때 엄마가 전화가 왔다. 네가 하도 전화를 안 해서 엄마가 했어,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런 엄마에게 쿨한 인사를 건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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