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5
1
고등학교 때 만우절은 교내의 큰 축제날이었다. 진짜 축제는 따로 있었지만 여고생들의 장난기가 폭발하는 비공식 축제였던 셈이다. 레전드로 전해 내려오는 만우절 거짓말 시리즈도 많았다. 언젠가 전교 부회장을 했던 선배는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내서 정학을 먹었다는 설도 있었다. 고추를 교탁 아래 넣어놓고 남자 선생님에게 고추를 꺼내 달라고 했다는 설도 있었다. 등장하는 도구도 카테고리의 경계가 없었다. 닭발을 던지고 놀았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2
우리 반은 그래도 비교적 양호했다. 일단 우리층의 교실 번호 순서를 바꿔달았다. 3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있다면 순서를 바꿔서 쭈루룩 달았다. 선생님은 열이면 열명 다 속았다. 교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음 시간에는 2학년의 한 반과 반 전체를 바꿨다. 들어온 2학년 과목 선생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는 키득거리면서 모르는 2학년 후배의 교과서를 보면서 수업을 듣다가 들켜서 돌아온 2학년 학생들을 맞아 주었다. 3교시는 체육시간이었는데 왜 만우절에 그런 폭력을 행사했는지 모르겠지만 떼거지로 선생님을 덮쳐서 체육창고에 던졌다. 한때 야구선수를 했던 거구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팔이 부러진 것 같다고 투덜댔다.
3
오후에는 더 가관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키가 작고 말랐는데 성격도 순한 양 같은 분이었다. 수업을 듣고 있는데 옆 반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교실을 뛰쳐나간 친구가 저 반에서 문학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도 가요! 반에서 제일 덩치가 좋은 친구가 영어 선생님을 들쳐 맸다. 그렇게 선생님은 학생에게 납치되어 옆반이 책상으로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 올려졌다. 결국 영어쌤의 춤과 노래를 보고서야 무대는 끝이 났다. 두 반 여학생들의 환호 소리에 라인업은 더 화려해졌다. 결국 세 반이 몰려와서 노래자랑을 열고서야 수업이 끝나는 종이 쳤다. 하루가 끝날 무렵 수업을 들어온 수학쌤은 만사를 포기한 듯했다. 수학쌤은 키가 큰 총각이었는데 반에 선생님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에게 결혼해 달라고 했다. 누군가 리코더를 꺼내서 결혼행진곡을 불었다.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친구는 꽃반지를 만들어서 선생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결혼식에 선생님이 장단까지 맞춰주고 나서야 하루가 끝났다.
4
대학 신입생의 만우절도 엉뚱했다. 학교 친구들이랑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오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의 각기 다른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만났다. 그날 하루 교복을 입고 강의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들어간 강의실에서 선배들이 왜 교복을 입었냐며 화들짝 놀랐다. 교수님이 왜 교복을 입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교복을 입고 술을 마시러 갔다. 아직 대학교 1학년이라서 교복이 그렇게 겉돌지 않을 때였다. 2학년이 됐을 때도 교복을 입을까, 했었는데 그게 무슨 추태냐며 모두 손사래를 쳤다.
5
이제는 만우절에 별다른 거짓말 이벤트가 없다. 그 흔한 만우절 고백 문자도 한 통 오지 않는다. 장난치고 놀 여력도 없는 세대로 접어들었나 싶다. 하도 재미가 없어서 서른한 살 만우절에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짜를 사월 일일로 잡아놓고 날짜가 너무 좋다면서 남편이랑 신나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와 날짜 너무 좋다! 혹은 왜 그런 날 결혼해?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마음에 드는 날짜였다. 돌이키려면 법원에 가야 하는 만우절 이벤트를 저지른 2017년 만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