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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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간 매일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지도 벌써 석 달 째다. 그 전에는 브런치에 글을 석 달에 한 개쯤 쓰고 있었다. 업데이트가 급격하게 게을러진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일상에 불평이 많았다. 그런 불평을 모두에게 공개된 공간에 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덥잖은 불평을 턱을 괴고 앉아 열심히 쓰고 싶지도 않았다. 불평을 곱씹는 건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씹어먹는 느낌이다. 괜히 그렇게 오래 씹지 않고 삼키는 편이 낫지. 자고 일어나면 희미해질 텐데 뭐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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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회사 게시판에서 백일 글쓰기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스토리펀딩을 통해서 백일 간 글쓰기를 해보신 분이 모집하는 것이었다. 같이 하실 분은 댓글을 달아주세요,라고 했는데 시시각각 댓글이 계속 늘어났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빠르게 불어나는 댓글 때문에 급히 합류했다. 대세에는 같이 올라타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이 한 카페에 모여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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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이 카페에는 재밌는 글이 많았다. 마감시간이 밤 열두 시인 탓에 술 먹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글을 읽으면서 취기를 느낄 수 있다니.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 회식 중에 잠깐 화장실에 와서 조각 글을 쓴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낯선 화장실에 들어와 핸드폰을 붙잡고 글을 쓰는 사람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어떤 글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담담하게 써진 문장이 무척 슬퍼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가끔 같이 밥을 먹는 사이인 동료의 글도 있었는데 말투와 똑같은 문체라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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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벙개를 한 번 했다. 회사 건물 일층에 모여서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는 그런데 서로의 이름만 알고 얼굴을 잘 몰랐다. 제가 누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서 우리는 인터넷 정모 같다고 깔깔 거리고 웃었다. 나는 쌩뚱맞게 남편을 합석시켰는데, 아무도 남편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내 일기에 남편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다들 남편이 술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은 낯설었지만 마음만은 친구처럼 편안했다. 남편도 나중에 집에 와서 술자리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 점이 신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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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는 드라마가 있다. 어떤 이는 연인과의 이별에 아파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회사 생활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 세계여행에서 캐리어를 통째로 도둑맞은 이야기도 있었다. 판교의 십층짜리 건물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은 아침마다 신분당선과 빨간 버스를 꽉꽉 채울 정도로 많다. 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최근 회사가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안에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넘치는데. 과연 이 곳을 재미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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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매일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다. 가까이 있는 동료들의 나와 정말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 또 정말 다른 이야기 속에서 나와 비슷한 면을 발견하는 것. 그런 일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만든 것 같다. 누구인지 잘 모르는 스물다섯 명이 있는 카페에 글을 쓰는 것이 아주 편안하게 느껴진다. 안락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