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휴가가 지금 나에게 미치는 영향

day-78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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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를 가지고 항공권을 샀다. 보너스 항공권은 수량이 많지 않은 탓에 티켓팅을 서둘렀다. 덕분에 내년 5월 휴가지가 벌써 정해졌다. 목적지는 영국 런던이다. 모든 여행의 시작이 비행기 티켓팅으로 시작되는데 이번만은 조금 달랐다. 이유는 인기 절정의 해리포터 연극 때문이었다. 최근 조앤 롤링 아주머니는 '저주받은 아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써냈는데, 이건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내년 공연도 벌써 티켓이 거의 매진된 상태다. 간신히 두 자리 예매가 가능한 날을 찾아서 연극 티켓을 먼저 산 뒤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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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한항공 비행기 티켓을 돈 안 내고 끊는다면 기분이 죽이겠지, 항상 꿈꾸던 순간이었다. 대체 몇 년을 모은 마일리지인가. 하지만 보너스 티켓은 공짜가 아니었다. 유류할증료를 25만 원 정도 지불해야 했다. 물론 무척 싸지만 그 앞에 해리포터 공연을 결제하는 바람에 별다른 감흥이 없어졌다. 해리포터 연극 티켓 두장을 사는데 40만 원이 들었다. 하지만 해리포터는 해리포터지 않은가. 다섯 시간에 달하는 22세기 연극이라는데! 남편과 나는 망설임 없이 1층 좌석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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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우리가 찾아본 곳은 해리포터 스튜디오였다. 지팡이를 파는 상점과 9와 4/3 승강장 같은 것을 보면서 잔뜩 신이 났다. 가면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둘러볼까 슬리데린 목도리를 둘러볼까 고민하면서!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의 아들을 가차 없이 슬리데린으로 보내버렸다. 저주받은 아이의 주 배경이 슬리데린이 되면서 사람들의 애정도 분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강탈한 주범은 해리포터 시리즈가 아니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신비한 동물사전의 캐릭터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진 속 니플러 인형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내년 연말에 신비한 동물사전 2편이 개봉한다고 한다. 그 영화 보러 갈 때 니플러를 한 마리 사서 안고 갑시다, 아니다 두 마리 사서 각자 안고 가야 할까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니플러 팬심을 인증했다. 니플러는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해서 금붙이나 보석을 보면 귀여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판매하는 니플러 인형은 그래서 지갑을 들고 있다. 거기에 니플러가 금붙이를 꽁냥꽁냥 모아두겠지. 흐엉 너무 귀엽다. 반드시 사 오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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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음악과 관련된 장소들이었다. 어제부터 엘라 피츠제랄드의 캐럴을 듣기 시작했는데, 엘라 피츠제랄드도 와서 공연을 했던 클럽이 있었다. 로니 스캇이라는 이름이었다. 공연 영상을 보는데 남편이 외쳤다. 우와 옆에 조 패스도 있네! 뿐만 아니라 뮤즈나 U2가 공연한 클럽들도 있었다. 비틀스가 사진을 찍어서 유명해진 횡단보도인 애비로드도 있었다. 세상에! 여기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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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왕우왕 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내년 오월 휴가다. 세상에 아직 멀었음... 정신을 차려야지, 입으로 되뇌는데 머릿속에는 이미 봐야 할 영화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억이 가물해진 노팅힐도 다시 봐야 하고, 해리포터 시리즈랑 신비한 동물사전도 다시 봐야 하고, 드라마 셜록도 더 보고 가야지! 매일 같은 시간 근로계약서에 붙들려 회사에 가는 직장인에게 휴가란 이렇게 짜릿한 존재다. 동료 하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휴가 가려고 비행기 티켓 끊으면 너무 좋아서 맛탱이가 가요. 이 정도면 엑스터시급 아닐까. 자려고 방에 들어가면 책꽂이 위의 레고로 만든 커다란 런던 브릿지가 나에게 말한다. 오월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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