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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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능시험이 없었던 수능날이다. 수능시험이 밀리면 수많은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 출제 위원들은 일주일 더 어딘가에 갇혀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여행을 취소할 것이다. 수험생 자녀를 위해 특별히 정성 들여 준비한 도시락 재료들이 일주일 더 냉장고에서 묵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능시험 당일에 맞춰 컨디션 관리를 해온 수험생들의 마음이 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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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의 들러리는 생각보다 많다. 지금도 그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2000년도 초에는 수능시험 보러 가는 선배들을 응원하는 문화가 있었다. 선배들이 시험을 보는 고사장 앞에 가서 힘내라고 구호도 외치고 따듯한 차도 주고 하는 역할이다. 이 응원 문화의 괴로운 점은 한 고사장에도 여러 학교 학생들이 시험을 보러 온다는 점에 있었다. 즉 한 학교 앞에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선배를 응원하겠다고 오는 것인데, 이러다 보니 자리 전쟁이 펼쳐진다. 더 좋은 자리에서 선배를 응원하려는 학생들의 경쟁은 전날 밤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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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나보다 일 년 먼저 경험한 사람은 우리 오빠였다. 처음 가보는 학교 앞에 가서 자리를 맡으며 밤을 새운다고 했다. 남고 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장비를 잘 동원하곤 했는데, 오빠의 무리들은 드럼통에 불을 피웠다. 어디서 그런 물건은 구한 건지 삼겹살을 사다가 삽에 구워 먹었다고 했다. 아니 널린 게 프라이팬인데 삽 같은 귀한 물건을 구해다 고기를 굽다니?? 무튼 오빠는 너무 어두워서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종이 같은 걸 태우기도 해서 재가 막 날리고 그랬는데, 재랑 같이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십 대 남자 고등학생의 위장은 용광로와도 같은 건지 이상한 걸 먹어 제끼고도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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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 년 뒤에 모 여고 앞에서 자리를 맡으며 밤을 새우게 되었다. 일찍 간다고 서둘렀건만, 이미 교문에서 가까운 자리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모두 맡은 뒤였다. 교문에서 한참 떨어진 귀퉁이 자리를 간신히 맡았다. 거기서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수다를 떨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침낭을 폈다. 침낭 속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우리 자리가 인도 끄트머리다 보니 차도와 무척 가까웠다. 길바닥에 누워본 건 처음이었는데, 차가 조금만 삐끗해도 우리를 다 밟고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금방 아침이 왔다. 부랴부랴 준비한 피켓을 세우고 뜨거운 물에 유자차를 타서 선배들에게 전달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선배들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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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 년 뒤에는 내가 그 대접을 받으며 들어가게 되었다. 학생회 후배들이 교문 앞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당시 남자 친구가 수능을 응원하겠다며 따라오는 바람에 후배들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게 됐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서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오토바이 뒤에 실려온 친구를 보고 깜짝 놀라서 왜 이걸 타고 왔냐고 물었다. 친구는 부모님 차를 타고 오다가 교통체증이 심해져서 오토바이로 바꿔 타고 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침부터 정말 오만 난리도 아니구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사장으로 입장한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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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자 해가졌다.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학교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잘 못 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아 돌아 집에 갔다. 아빠는 성인이 되면 첫 술은 아빠와 마시겠다고 선언한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참치회가 들어있었다. 수능 끝났는데 아빠랑 술 안 먹냐고 하는 아빠를 등지고 방에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려고 하는데 라디오에서 자꾸 수능이 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젠장 난 정말 망했네,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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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수능의 해피엔딩은 이렇게 끝나야 하는데. 그리고도 인생은 계속 이어지고 해피엔딩 뒤에도 각종 고난이 닥친다는 것이 인생의 진리. 모든 인생의 해피엔딩은 관 뚜껑 닫을 때까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