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업계에

day-94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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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초의 메신저는 버디버디였다.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한 곳은 프리챌, 개인 sns는 싸이월드가 시작이었다. 내 싸이월드의 전성기는 고3 때였다. 그때만 해도 삼성 애니콜의 카메라폰이 인기였다. 폴더폰인데 가운데 중심축에 회전이 되는 카메라가 달려있는 구조였다. 와 이렇게 설명하니까 너무 응답하라 2004... 옛날 사람 인증하느라 손발이 오그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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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눈이 크고 턱이 좁게 나오는 각도로 셀카도 열심히 찍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친구들 사진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볼펜 뚜껑을 실핀 삼아 앞머리를 꽂아 올린 친구, 교복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양반다리를 하고 공부하는 친구, 야자하다 자는 친구 등등. 친구들의 가장 살찌고 못 생긴 때의 사진이 내 미니홈피에 두둑하다. 반 친구들이 서로의 사진을 보려고 내 미니홈피에 많이 왔었다. 가장 많이 퍼간 사진도 아마 그때의 사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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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브런치를 쓰듯이 그때 미니홈피에도 뻘글을 많이 적었다. 대학은 좋은 데 가야 한다는데 성적은 안 나오고, 공부는 해야 하는데 잠은 쏟아지고. 대충대충 공부하다 자정에 학교를 나서면 까만 밤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두운 길을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잠깐 미니홈피에 쏟아내고 자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미니홈피에 답글을 단 사람이 나타났다. 무슨 글인가 싶었는데 제목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은하야,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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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었다. 내용이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어른들이라고 뭐든지 다 잘 아는 건 아냐, 그냥 너를 도와주고 싶은 거란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담임은 작가 출신의 한국지리 선생님이었다. 매달 우리들에 대한 시를 써서 교실 뒤에 붙여놓으시곤 했었다. 체육대회가 있던 날 가쁜 몸을 추스려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 쳐들어와서 노래방을 가자고 하던 선생님이었다. 작가적 기질이라고 해야 할까, 정서가 풍부하신 분이었다. 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겨 야자를 하던 친구들이 노래방에 향했는데 가는 길에 선생님은 자꾸 차도로 걸었다. 위험하다고 말리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자기는 자유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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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행사만 있으면 우리들 사진을 잔뜩 찍어주던 선생님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모두 인화해서 노트에 순서대로 붙였다. 그 노트를 반에 돌리고 각자 갖고 싶은 사진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 이름 수만큼 사진을 인화해서 나누어 갖던 반이었다. 그런 정이 쌓여서 졸업하고 나서도 몇 번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졸업한 우리에게 직접 만든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출판사 이름 란에는 동네 복사집 이름이 적혀있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는 선생님은 우리랑 2차까지 가서 거하게 술을 마신 뒤, 다시 차로 우리를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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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싸이월드를 쓰고 있었다면 아직도 담임과 연락이 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게시판에 남겨진 선생님의 답글을 보았겠지. 그리고 선생님을 떠올리고 한 번쯤 더 연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친구들과도 많이 연락이 끊겼다. 싸이에서 페북으로 옮겨가고 또 거기서 인스타로 건너가면서 인맥들도 약간씩 변했다. 과거의 인맥은 시간에 씻겨 사라지고 새로 생긴 관계들이 좀 더 입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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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싸이월드를 만든 회사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sk커뮤니케이션즈라는 회사가 뭘 하는 회사인지 몰랐다. 싸이월드랑 네이트를 서비스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하, 고개를 끄덕이고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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