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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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인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앞부분을 살짝 봤다. What is reality? 라는 질문이 나온다. 만약 세상에 색깔이 없다면? 냄새가 없다면? 소리가 없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화면을 바꾼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 같다. 너의 뇌가 처리한 정보, 그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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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있는데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매트릭스 생각도 좀 나면서. 결국 내 주변에, 혹은 세상에 가득한 어떤 존재들이 있더라도 그것을 내 뇌가 처리할 수 없다면 나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없다. 그런 것들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상상력이 하찮아서, 급하게 떠오른 것이 타인의 고통이었다. 예전에 '타인의 고통'으로 일기를 써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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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세계는 너무나 주관적이다. 즉 고통은 개인에게 존재하지만 타인에게 실존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의 공감능력에 따라서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고, 있기도 없기도 하다. 김연수의 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작품에서는 본격적으로 이에 대해 다룬다. 이유 없이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통증 클리닉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코끼리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코끼리를 공으로 바꿔보고, 공을 멀리 던져보세요. 뭐 그런 대사가 등장한다. 아 자신의 고통도 이런 식으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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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고통에 대해서 쓰고 있는 이유는 아프기 때문이다. 그냥 평소 먹는 정도의 밥을 얌전히 먹은 뒤 단단히 체해서 고생하고 있다. 왜 체하면 배가 안 아프고 머리가 아플까. 메슥거릴 때는 왜 눕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되는 것일까. 약을 먹고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는 저녁을 보내면서 고통에 대한 일기를 남긴다. 아픈 것도 결국은 부족한 신체기능을 돌보고 회복시키기 위한 생명연장의 활동이겠지. 사는 건 너무 힘들다. 앞으로도 계속 아플 텐데 하,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