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7 <그알-국정원 변호사 죽음 의혹>을 보고
1
나의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주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망한 국정원 소속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검찰의 조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일했던 실무자라고 한다. 이 사람의 죽음을 가족에게 가장 먼저 알린 것은 국정원이었다. 그런 정황을 수상하게 여긴 가족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 제보한 모양이었다.
2
사망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방송이 나왔다. 덕분에 사망한 변호사의 행적이 편의점이나 길가의 cctv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카메라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그는 죽기 전날 강원도에 사는 30년 지기 친구를 만났다. 그런 뒤 왜인지 강릉 앞바다의 다리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행인이나 구조한 경찰 모두, 그것이 자살 상황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범죄심리학자는 누군가에게 경고하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3
그후 변호사는 춘천의 한 주차장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이동 경로 내내 cctv를 무척 피해 다녔다고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자료와 cctv들을 모아서 약간의 경로를 밝혀 냈는데, 여전히 번개탄을 구입한 곳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죽기 전 1박 2일 동안 사망한 변호사는 오직 현금만을 사용했으며 cctv를 피했고, 사망할 때는 2G 폰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사람은 왜 이토록 감시를 피해 다닌 것일까. 그 와중에 남편과 함께 갔던 춘천의 유명 카페 cctv 영상이 확보된 것을 보았다. 특이한 철제 담장을 쓰고 있어서 바로 그 카페인 걸 알 수 있었다. 밤늦게 까지도 음악과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저기를 어떤 사람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4
사망자가 발견되기 전 춘천의 그 주차장을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드넓은 주차장에 차 석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목격자가 지나간 시간은 경찰이 사망자를 발견하기 전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사망한 변호사가 발견되기 전, 누군가 그 자리를 먼저 다녀간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사망자는 세 개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2G 폰 하나만 발견된 것도 이상한 부분이었다.
5
이 변호사가 사망하고 나서 며칠 뒤 같은 TF에서 근무했던 변창훈 변호사도 투신자살했다. 현직 검사가 조사 중간에 투신을 한 것이다. 뛰어내렸다는 화장실의 창문은 성인 남성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로 작았다. 저기를 통과하려면 기를 쓰고 몸을 빼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기를 쓰고 죽어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했던 것일까.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는 변호사는 왜 죽기 하루 전에 얕은 바다로 뛰어내렸을까. 경찰에게 구조되어 파출소에 있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는데 그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6
이런 사건을 접할 때면 두려움이 느껴진다. 경찰이나 검찰에게도 기댈 수 없는 거대한 권력. 모든 상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철저하게 힘을 잃는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저런 곳 근처에 가지 말아야지, 엮이면 나도 죽을지도 몰라. 두려움이 만드는 의도적인 외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는 이유다. 강력한 힘은 그것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네도 이렇게 되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 그런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7
이런 메시지는 비단 국가와 국민 사이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도 막대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말한 것이 어떤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를 걱정한다. 한 때는 길거리에서 서명하는 것도 하지 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불이익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이상한 일들이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상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