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목표

day-1. 두 번째 백일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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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나는 취준생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니지만 언제나 짊어진 현실이 제일 어려운 법이지. 당시의 나는 뭔가에 쫓기고 있었다. 기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매일 시사상식책을 외우고 매주 이천자 원고지를 채워 논술을 썼다. 하지만 뾰족하게 남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고 싶은 언론사는 손에 꼽을 정도고 거기서도 손에 꼽을 정도만 뽑았다. 내가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질문 뒤에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대답이 따라왔다. 아니. 난 안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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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도전한 일인데 된다고 생각하고 공부했다면 좋았을 텐데. 기울어가는 마음을 다시 곧게 세우는 것은 어려웠다. 기우는 마음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것은 더 삐딱해졌다. 그래서 였을까 그 무렵 소설을 많이 읽었다. 박민규, 한강, 파울로 코엘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에는 비극적인 이별을 하는 커플이 나오고, 하루아침에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여자도 나왔으며, 정신병원 이야기도 나오고, 사이비 종교 교주도 등장했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와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야기에 빠졌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나는 현실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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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첫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좀 놀면 되지 뭐, 했지만 생각보다 불안은 금방 찾아왔다. 밤마다 구직 사이트를 들락 거렸다. 구직 애플리케이션을 여러 개 깔고 이동 중에도 매일매일 갈만한 회사를 찾았다. 자는 시간은 새벽으로 바뀌었고 한낮에 일어났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기억난다. 한 대문을 쓰지만 방방마다 다른 가정이 사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적힌 이야기다. 철없는 젊은 여자, 인생이 비극으로 가득한 아줌마, 바람피우는 남자, 순정파 깡패, 열두 살 아이까지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어느 한 명도 평범하지 않다. 일상은 사건 사고로 넘친다. 하지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은 아무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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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냥 나도 사는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가 뭐 대단한 비극도 아니고, 그냥 1시간 수업 들으면 10분 쉬듯이. 그런 일상일 뿐이다 싶었다. 소설은 가까운 사람의 격려나 위로보다도 더 큰 위안을 나에게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큰 힘이 되는데, 나도 그런 힘이 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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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쓰자,라고 한켠에 목표를 잘 꿍쳐(?)놨었다. 하지만 신내림도 아니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나도 한 글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지인 하나가 메일로 자기 글을 보내왔다. A4용지 한 장 짜리 소설이었다. 짧은 거라도 이렇게 써볼 수 있다며 나에게 이렇게 써보면 어때, 하고 제안을 했다. 그걸 보고 나도 몇 줄이라도 좋으니 짧은 이야기라도 써보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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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 년간 새해 목표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짧아도 좋으니 쓰자,라고 했지만 결국 그 짧은 이야기 쓰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삼 년이 걸렸다. 그 숙원사업의 달성은 매우 어이없는 계기로 이뤄졌다. 100일간 매일 글쓰기를 하다가, 하루는 너무 쓸 것이 없어서 이야기를 지어 쓰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소설이 탄생되었다. 뭐야, 이렇게 간단하게 써볼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달성되어서 스스로도 어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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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신년 목표도 역시 이야기를 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기 말고 허구를 더 써보고 싶다. 허구를 쓸 때 즐겁고 신난다.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주인공을 남자로 할까, 그 사람은 어떤 습관을 갖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올해는 일기보다 소설을 더 많이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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