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개

D-3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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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많다. 고삼 때 담임은 나를 교무실에 켜놓으면 심심하지 않다고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가 튀어나오는 게 신기하다며 세상 희한한 물건 보듯이 나를 보던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급회의를 하면 나와 다른 한 명의 말싸움으로 끝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말 많은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런 나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그러진 못했다.


2

말을 많이 하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목해줬으면 좋겠어. 나 이만큼 알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말에는 주로 과장이 담겨 있었다. 또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틀림을 지적하는 일도 많았다. 생각의 속도로 말을 쏟아내고 나면 너무 과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 감정을 상하게 한게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3

지금도 여전히 말이 많기는 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말하기는 부쩍 줄었다. 예전에는 내가 주목받아야 자리가 즐거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가 있고,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 걸 보는 것도 재밌다. 전에도 한 번 썼던 말인데, 관종으로 태어났지만 관종으로 죽지는 않을 건가 보다.


4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매일 자기 전에 가습기에 주전자로 물을 채워 넣는다. 빨간 주전자에는 코끼리 코 같은 길고 단단한 부리가 달렸다. 싱크대에서 물을 넣으며 주전자 안을 응시한다. 빨간 겉과 달리 주전자 안은 돌멩이 같은 남색이다. 그 어둡고 오목한 공간에 투명한 것이 고이는 걸 바라본다. 로션을 바른 손이 매끈한 곡선의 손잡이를 타고 조금씩 미끄러진다. 가습기 위에서 주전자를 기울이면 새침한 물부리를 스쳐 물이 콸콸 나온다. 단단하고 빨간 쇠, 굵은 물줄기, 주룩주룩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의 평온함을 준다.


5

소소한 물건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왈가닥 캐릭터 이면에 바느질 같은데 취미가 있어 사람들을 은근히 놀래켰다.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건 뭐든지 다 좋다. 어쩌다 문화센터에서 배워본 클레이 공예에 빠져 자격증을 땄다. 옷 값이 오만 원만 넘어도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백만 원짜리 미싱은 샀다. 옷을 고르는 것보다 원단을 고르는 것이 훨씬 재밌다. 물론 사놓고 뭘 만들어야 할지 몰라 방치된 원단이 한 무더기인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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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없는 건조한 글을 맨날 여러 문단 써 제끼고 있지만, 사실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걸 좋아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나의 근본 없는 드립 잔치에 익숙하다. 말도 안 되는 라임을 맞추느라 진짜 이상한 말들을 내뱉곤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정색하는 사람들 표정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이런 개그를 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이런 격한 정색이로군, 하는 생각에 누가 나에게 개드립을 치면 그것도 정색으로 받아준다.


7

내 소개를 하고 싶은 생각에 두서없이 적어 보았는데 나의 단면적인 특징들을 적으니 연결이 안 되는 느낌이다. 이 모든 특징이 사실 한큐로 엮여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가장 큰 팬이기 때문에 이 모든 설명들도 미화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냥 시끄럽고 자질구레한 취미생활한답시고 인스타에 자랑질이나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아마 어떤 이에게는 정확히 이런 캐릭터일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가 상관없이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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