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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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여름마다 영혼 없이 토익학원에 다녔다. 영어는 고등학교 때부터 싫었고, 토익학원도 싫었다. 왜 토익학원들은 하나 같이 숙제를 많이 내주는지. 한 번 학원을 가면 이틀은 꼬박 해야 할 것 같은 분량의 숙제가 나왔다. 당연히 다 못해갔고, 늘 밀리는 숙제는 낙오자가 된 느낌을 줬다. 안 그래도 영어 못하는 낙오자라서 학원을 간건데 더 언짢은 기분이 되었다. 그런 식이니 당연히 실력이 늘리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낙오자 같은 기분으로 살 수 없다는 마음에 무작정 유학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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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지하에 있는 유학원에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내가 먼저 말한 건지 아저씨가 먼저 제안한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드니나 멜버른보다 브리즈번이 저렴하다며 아저씨는 사백만 원 남짓한 견적서를 뽑아주었다. 견적이 생각보다 만만해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만만한 견적에 솔깃했던 친구 하나가 합류했다. 우리 둘은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일 년 치 짐을 구겨 넣고 남반구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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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원 아저씨 말에 의하면 브리즈번은 시드니, 멜버른에 이은 호주 제3의 도시라고 했다. 도시는 다 서울 같이 생긴줄 알았던 나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2존 3존으로 퍼져나가는 도시 형태를 호주에서 처음 봤다. 1존 끝에서 끝까지 도보로 횡단할 수 있는 작은 도시가 무척 신기했다. 호주는 다 이런 건가 했는데, 나중에 시드니와 멜버른에 가보고 나서야 2위와 3위의 차이가 얼마나 현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드니 > 멜버른 >>>>>>>>> 브리즈번 이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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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에 산지 육 개월쯤 되었을 때 프랑스에서 오빠의 졸업식이 있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나는 브리즈번에서 각각 출발해 로마에서 만났다. 엄마와 함께 로마와 파리 여행을 했다. 이때는 영어가 조금 늘어서 간단한 회화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엄마가 봤기 때문인지 그 이후로 혼자서 해외여행을 갈 때도 엄마가 반대한 적이 없었다. 그 여행이 없었다면 엄마는 위험하게 여자 혼자서 어딜 가냐고 만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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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포썸이 걸어 다니는 도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직업이 목수이고 인터넷 설치를 하려면 기사에게 최소 100달러는 지불해야 하는 나라. 가장 대중적인 신문이 위클리로 발행되는 나라에서 일 년을 살면서 세상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거기에서 아무 별 볼 일 없는 나에게도 쉽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도 만났다. 10달러짜리 물건을 보면 한 시간 노동으로 보였던 시절.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워서 거침없이 가장 싼 물건만 샀던 그때가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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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스쳐간 사람들과 짧은 영어로 쌓은 추억들, 그것들도 다 브리즈번에 있었던 시간이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한다. 또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그때 얻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7년 만에 가도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버터치킨 카레를 만들어주는 식당도 아직 그대로다. 아마 나는 언젠가 또 브리즈번에 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