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
1
현관문 언저리에 오빠 가방이 걸려있다. 몇 년을 오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작은 가방이다. 하도 오래 써서 가방 끈이 뜯어졌다. 우리 신혼집이 백화점 근처라는 이유로 오빠는 가방 수선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뜯어진 물건을 고쳐 쓰는 법이 없다. 닳거나 해진 물건은 버리고 새로 산다. 애당초 맡길 매장도 없다. 나는 가방을 백화점에서 사지 않기 때문이다. 한 부모 밑에 나와서 같은 동네에서 자라도 이렇게 다른 인격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2
오빠랑 같이 밖에 나가면 꼭 뛰게 된다. 운동삼아 달리는 건 당연히 아니다. 오빠가 항상 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콧잔등을 쓸어 개기름을 묻힌 뒤 내 옷에 닦으려는 식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도망을 간다. 그렇게 오빠와 둘이 어딘가를 나섰다가 뛰어서 집에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둘 다 서른이 훌쩍 넘었다. 아직까지 이러고 노는 건 내가 아니라 오빠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나 때문은 아닐 거야...
3
어릴 때부터 오빠와 나는 서로 잘하는 게 달랐다. 예를 들어 오빠는 국영수를 잘했고 나는 기술, 가정 같은 과목을 잘 했다. 아 이 엄청난 과목의 불균형이란... 오빠는 모범생이었고, 전자 사전이고 시디플레이어고 공부하는데 필요하다면 엄마가 다 사줬다. 반면 그런 혜택이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MP3 CDP가 너무 갖고 싶어서 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 돈 벌어서 시디피도 사고 엄마 선물로 금반지도 사준 과거가 떠오른다. 정말 쟁취의 역사를 살았군.
4
오빠가 고삼이 되었을 때는 서로 왕래가 별로 없었다. 같은 집에 살았지만 말을 별로 섞지 않았다. 주로 나누는 대화는 서로 컴퓨터를 쓰겠다는 다툼이었다. 오빠의 장래희망이나 진로설계는 그닥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도 의대를 많이 지원하길래 의사가 되고 싶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 오빠가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집안 분위기는 무거워 졌다. 재수를 하면 집에 수험생이 두 명이 되는 것이 우려되어 오빠가 무리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오빠는 남들이 대학 가는 것보다 몇 달이나 빨리 입소를 하게 되었다. 오빠가 사라지자 컴퓨터가 덩그러니 남았다. 집안이 고요했다.
5
장난기 많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오빠는 그렇게 군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치다가 해가 뜰 때까지 밤새 혼자서 얼차려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오빠도 어엿한 군인이 되었다. 전라도 사람들로 점철된 집안에 군인이 탄생하면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일어난다. 아빠는 진보 성향인데 아들이 극보수 성향을 띄는... 덕분에 투표하는 날이면 우리 집에서는 서로에게 누구 뽑았냐고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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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기 기질은 버릴 수가 없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오빠의 알 수 없는 강렬한 기호들은 여전하다. 오빠는 누구보다도 먼저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엔 집 베란다에 외발 자전거가 와 있었다. 핸들과 바퀴 하나만 덜렁 달린 그 물건을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이런 걸 왜 사냐는 질문에 오빠는 당당하게 외쳤다. 야 이거 얼마나 멋있는데! 언제쯤 오빠가 좀 상식적인 물건을 사는 날이 오려나. 언제쯤 우리는 안 뛰고 얌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이 남매의 미래도 심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