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1
초급 주부인 나에게 살림은 아직도 탐구영역이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검색으로 시작해야 한다. 요리 레시피부터 세탁기 청소, 화장실 곰팡이 지우기, 양파 오래 보관하는 법 등등. 내가 이렇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한 줄 몰랐었다. 화장실 청소는 좋은 향이 나는 예쁜 통에 든 걸 뿌려서 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락스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과탄산소다가 들어있는 찬장을 보면 흡족하다. 이렇게 살림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나 싶다.
2
지금도 방에는 가습기와 공기청정기가 필터 청소를 해달라는 표시등을 켜고 나를 재촉한다. 이 집에 사는 일 년 동안 냉장고 청소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주말에는 보이는 곳을 물티슈로 닦지만 제대로 된 청소는 그 이상의 노동시간을 요구한다. 간혹 나는 현대인의 생활이 아주 잘못된 구조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3
나는 일주일에 간신히 한 번 정도 운동을 한다.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운동할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다. 여덟 시간 자고 회사에서 아홉 시간을 보내면, 하루의 열일곱 시간이 지난다. 출퇴근 한 시간 빼고 여섯 시간이 남는데, 씻고 요리하고 휴식하는 둥하면 끝난다. 매일 저녁 잘라놓고 바느질하지 못한 원단에 눈길만 주고 있다. 새콤달콤한 무채 무침을 하고 싶어서 무를 샀는데 이번 주말에나 간신히 하려나. 화장대 위의 물건을 싹 내려놓고 한 번 닦고 싶은데 결국은 그냥 화장품 사이사이 보이는 데만 닦게 되는 생활이 아쉽다. 내가 쓰는 공간을 좀 더 정성 들여 청소하고, 내가 먹는 것을 좀 더 공들여 만들고 싶은데 어쩐지 시간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는 느낌이다.
4
이 시간도 남편이 혼자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틈이다. 얼른 일기를 마무리하고 과일을 씻어주고 싶은데. 마음이 또 저 멀리 가버린다. 명상을 할 때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느끼라고 가르친다. 들고 나는 숨에 가만히 집중하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가만히 보는 것. 그렇게 해야 간신히 현재가 느껴진다. 아직 하지도 않을 일에 마음이 휩쓸리고 괜시리 쫓기게 되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5
한 가지 일에 하나씩 집중하면서 시간을 쓰고 싶다. 지금도 이걸 쓰고 나서 재봉틀을 좀 돌려볼까, 아니면 읽어야 하는 책을 좀 펴봐야 하나 마음이 갈팡질팡 한다. 이러다가 이도저도 하지 않고 그냥 핸드폰으로 웹툰만 보다가 자러 갈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재봉틀을 돌려야겠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냉장고 청소하는 방법을 검색해보고 자야지.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가 내 방이 돼지우리 같다고 했는데. 결혼하면 치워주는 엄마가 없어서 정말 돼지우리에서 살게 될 줄 알았더니, 역시 동물은 적응하는 생명체인가 보다. 살림하는데 시간을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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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에는 레몬 한 망을 사다가 열심히 닦아서 레몬청을 만들었다. 여러 병 만들어서 친정에도 갖다 드렸다. 엄마는 레몬을 얼마 주고 샀는지 물었다. 만 원 정도 했다고 답하자 엄마는 말했다. 그 돈이면 그냥 레몬청을 사도 되지 않아? 네 엄마 사는 게 더 싸고 더 맛있어요... 나는 왜 시키지도 않은 살림을 한다고 이러고 있는지 참. 역시 사람은 뭐든 겪어봐야 자기 스스로를 알게 되는가 보다.